유진그룹이 결국 하이마트를 포기했다. 하이마트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측과 극한 싸움을 벌였지만, 하이마트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자 하이마트 지분을 전량 처분하는 폭탄 선언을 했다. 선 회장 측도 함께 지분을 처분하기로 함에 따라 국내 최대 전자제품 판매사 하이마트는 새 주인을 맞게 될 전망이다.

◆ 패자도 승자도 없는 싸움

반전에 반전의 연속이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던 양측은 지난달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목전에 두고 극적인 타협을 이끌어냈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선 회장이 하이마트 각자대표를 맡기로 하고 갈등을 봉합한 것.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양측은 하이마트 지분 전량 공개 매각 결정이라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양측의 갈등에 중재 역할을 했던 3대주주인 H&I컨소시엄도 공개 매각에 나서기로 했다.

분쟁 당사자였던 유진과 선 회장 모두 하이마트에서 손을 떼는 것으로 사태를 종결하겠다는 것이다. 유진과 선 회장 측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양측 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져 공동 경영이 더 이상 어려워진 데다 주주에게 신뢰마저 잃은 만큼 1, 2, 3대주주 모두가 지분을 처분해 하이마트의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매각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 왜 매각으로 돌아섰나

유진이 하이마트에서 전격적으로 발을 빼기로 한 데는 ‘하이마트 프리미엄’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유진그룹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진 관계자는 “이번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하이마트 경영권 장악이 앞으로도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며 “최대주주이면서도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기업의 지분을 굳이 보유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2007년 말 우량 기업인 하이마트를 인수해 그룹의 위상을 강화하려던 당초 계획이 틀어진 만큼 더 이상 하이마트 경영권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선 회장 측의 반발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이로써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레미콘-금융-유통 등 3대 주력 사업을 축으로 도약하려던 유진의 비전도 물거품이 됐다.

유진그룹의 취약한 재무구조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진은 지난 5월 자산 매각 등으로 재무구조 약정에서 졸업했지만 관계사에 대한 지급보증 규모가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등 여전히 재무구조가 불안정하다. 주력 사업인 레미콘 부문도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장악에 실패한 유진이 하이마트와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매각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선 회장 측도 분쟁 과정에서 이미지가 크게 훼손돼 하이마트를 계속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유진과 보조를 맞추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선 회장 측이 경영권 다툼의 책임을 지는 모양새지만 유진을 끌어들여 투자 회수 기회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GS·롯데, 인수 후보로 부각

유진과 선 회장 측은 하이마트 공개 매각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개 매각 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갑작스런 결정으로 공동 매각 방향만 정했다”며 “매각 일정은 차차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진과 선 회장, H&I컨소시엄 등이 공동 매각하기로 한 지분은 모두 57.59%에 이른다. 이날 하이마트 시가총액(1조7044억원)을 감안할 때 매각금액은 1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하이마트 유력 인수 후보로 GS, 롯데그룹 등을 꼽고 있다. GS와 롯데는 2007년에도 하이마트 인수전에 나선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롯데마트가 최근 ‘디지털 플라자’라는 숍인숍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 통큰 TV, 통큰 노트북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 하이마트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박영태/조미현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