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녀프로골프협회가 새로운 수장으로 ‘기업인 회장’을 찾느라 분주하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지난달 23일 외부 인사 영입을 공약한 이명하 프로(54)를 제14대 KPGA 회장으로 선출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지난달 28일 임시총회를 열고 강춘자 프로(55)를 수석부회장으로 뽑는 등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외부 인사 회장을 찾아나섰다.

남녀협회 모두 ‘기업인 회장’을 영입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명하 프로는 당선 직후 풍산그룹의 류진 회장을 모셔오겠다고 약속했다.

류 회장은 당초 한장상 KPGA 고문의 회장직 제의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경선에 나선 최상호 프로가 “역대 회장단이 외부 인사 영입 조건으로 대회 수 18개에다 정규투어와 플레잉 프로 및 챔피언스투어를 위해 31억원을 내놓기로 하고 공증까지 받기로 합의했다”며 공증서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그런 말을 들은 적 없다”며 회장직 제의를 거절했다.

또 어떤 당선자가 회장직을 제의해 오더라도 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비서실을 통해 공개하고 “맡을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명하 프로는 류 회장 영입 약속에 힘입어 박빙의 표차로 최상호 프로를 누르고 당선됐다. 따라서 류 회장 영입이 무산되면 KPGA가 심한 내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KLPGA는 세 차례에 걸쳐 새 회장을 선출했다가 정족수 미달, 법적 절차 무시 등의 이유로 무효가 되는 망신을 당했다. 급기야 법원 결정에 따라 회장단의 직무집행이 정지돼 법원이 선임한 김대식 변호사가 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마친 강춘자 수석부회장은 “기업인 가운데 여러분이 물망에 오르고 있어 오는 20일쯤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수석부회장, 부회장, 전무, 이사 등 요직을 다 정해놓은 상태에서 회장을 찾는 모양새부터 이상하다는 지적이 많다. 골프계의 한 인사는 “회장은 ‘얼굴마담’이나 하라는 소리인데 누가 맡으려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양대 협회의 외부 인사는 누가 와도 협회 내 ‘밥그릇 싸움’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회장이 장기간 공석으로 남을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프로들에게 돌아간다. 선수들이 대회 준비 소홀과 대회 수 감소를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일류로 부상한 선수들을 뒷받침해야 할 협회 행정이 여전히 삼류에 머물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