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준법지원인制 시범운영부터 해야
요즈음 각 기업들은 불확실한 경제상황 속에서 생존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대폭 개정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법 등 새로운 법제에 대한 실무적 검토와 대비에 분주하다.

그런데 개정상법의 여러 제도 중에서 준법지원인제도는 기업을 매우 당혹케 하고 있다. 준법경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각계각층의 여론 수렴과 토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장기업에 의무화해 기업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기업의 불법경영활동을 감시함으로써 투명경영을 도모해야 한다는 변호사 업계의 논리는 기업을 범죄 집단 대하는 듯한, 지나치게 반기업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대거 양산되는 변호사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따라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조조정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현 경제상황과 기업현실 속에서 이 제도가 꼭 필요한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본래 준법경영이란 정도경영의 일환이다. 상장회사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엄격한 법치국가에서는 회사법을 비롯해 환경·노동·회계·공정거래·증권 등 다양한 법규를 준수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기업경영 활동을 할 수 없다. 때문에 각 기업들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준법통제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분식회계 문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내부회계관리제도가 법제화돼 시행 중이다.

상장회사는 엄격한 기준에 의해 작성된 재무서류 등 기업내용을 낱낱이 공시해야 한다. 만약 부실기재나 허위공시가 있는 경우 증권집단소송의 대상이 되는 등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경영일선에서는 법규 위반사항이 있는지를 매우 세심하고 엄중하게 살피고 있다. 준법경영과 투명경영이 필수적 생존전략이 되고 있는 상장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굳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비용을 늘리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으로 우리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층 더 강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법률서비스 시장도 개방돼 국제적 대형 로펌의 국내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변호사들의 일자리 마련이라고 지적받는 준법지원인제도의 도입은 아이로니컬하다.

현재 준법지원인제도 관련 시행령 개정을 위해 이 제도의 적용대상과 준법지원인 자격 범위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준법지원인제도는 개정법이 공포된 이후에도 그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는 실질적 효과가 있다고 사회적 확신이 생길 때까지 적용대상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며 시범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유용성이 확인된 후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해도 늦지 않다. 아울러 준법지원인의 자격은 다종다양한 기업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기업법률에 관한 실무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포함하도록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회사가 각기 특성에 적합한 자를 영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놔야 한다. 상장회사에서 상당기간 법률관련 업무를 수행한 전문가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직종을 접한 경험이 있는 법률가들에게까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준법지원인제도가 우리 기업에 안착하려면 기업들의 긍정적인 인식과 활용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준법지원인제도를 설치·운용하는 회사에 대해 다양한 민·형사상 및 행정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 제도가 회사에 이익이 된다면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준법지원인제도를 도입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치 < 일동제약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