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송년회 술판 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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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어느 연말 송년회에서 고주망태가 된 50대 직장인이 서울 반포의 하수구에 빠졌다. 취기에서 깨어나 보니 칠흑 같은 어둠에 악취가 심했다. 맨홀 속이란 걸 깨닫고 “사람 살려”를 외치며 출구를 찾아 헤맸으나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시며 사투를 벌이던 중 담배를 피우러 나왔던 40대 남자가 기척을 듣고 119에 신고한 덕에 탈진 직전 구출됐다. 무려 9일 만이었다. 수염이 더부룩한데다 다리와 머리에 비닐을 두른 채 구조된 후 그가 한 말이 걸작이다. “액땜을 단단히 했군.”
이 정도는 아니라 해도 해마다 송년회 과음으로 몸고생 마음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해를 보내며 얼굴 한 번 보자는데 대놓고 피하기 어렵고, 일단 참석하면 분위기에 젖어 자의반 타의반 술을 마셔야 하는 탓이다. 이렇다 보니 야구에 빗댄 ‘송년회 술자리 대처 방안’이라는 우스개까지 나돈다. “원샷!”을 외치며 강속구로 승부하지 말고 연장전(2차,3차)에 대비해 체력을 안배하라, 두주불사형 강타자들 옆의 포지션을 피하고 하위타선을 공략하라, ‘화장실’ ‘전화’ 등 작전타임을 적절하게 활용하라, 건배할 때 마시는 속도를 조절해 헛스윙을 유도하라….
공연관람, 이웃돕기, 송년밤열차 같은 색다른 송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먹고 마시기가 대세다. 문제는 음주가무형 송년회를 바라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점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35명에게 먹고 마시는 송년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69.9%가 ‘바뀌어야 한다’고 답한 것만 봐도 그렇다. 21.5%는 ‘어쩔 수 없다’였고 ‘좋다’는 대답은 8.6%에 불과했다. 열에 아홉은 억지로 끌려가는 셈이다. 원하는 것은 문화송년회라는 대답이 58.6%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직원들 노고를 격려하는 시상식 송년회(40.0%) 봉사활동을 통한 나눔 송년회(30.8%) 순이었다.
재미있는 건 속마음과 상관없이 올해도 실제 기업들의 75.7%는 ‘먹고 마시는 송년회를 계획중’이라고 답했다는 거다. 영국 극작가 제롬은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들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해친다”고 했다. 가뜩이나 바쁜 연말에 원치도 않으면서 ‘아군’끼리 술로 내상을 입는 일은 피할 일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상사가 눈 딱 감고 “이번엔 술판 없는 송년회를 하자”고 한마디 하면 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이 정도는 아니라 해도 해마다 송년회 과음으로 몸고생 마음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해를 보내며 얼굴 한 번 보자는데 대놓고 피하기 어렵고, 일단 참석하면 분위기에 젖어 자의반 타의반 술을 마셔야 하는 탓이다. 이렇다 보니 야구에 빗댄 ‘송년회 술자리 대처 방안’이라는 우스개까지 나돈다. “원샷!”을 외치며 강속구로 승부하지 말고 연장전(2차,3차)에 대비해 체력을 안배하라, 두주불사형 강타자들 옆의 포지션을 피하고 하위타선을 공략하라, ‘화장실’ ‘전화’ 등 작전타임을 적절하게 활용하라, 건배할 때 마시는 속도를 조절해 헛스윙을 유도하라….
공연관람, 이웃돕기, 송년밤열차 같은 색다른 송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먹고 마시기가 대세다. 문제는 음주가무형 송년회를 바라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점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35명에게 먹고 마시는 송년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69.9%가 ‘바뀌어야 한다’고 답한 것만 봐도 그렇다. 21.5%는 ‘어쩔 수 없다’였고 ‘좋다’는 대답은 8.6%에 불과했다. 열에 아홉은 억지로 끌려가는 셈이다. 원하는 것은 문화송년회라는 대답이 58.6%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직원들 노고를 격려하는 시상식 송년회(40.0%) 봉사활동을 통한 나눔 송년회(30.8%) 순이었다.
재미있는 건 속마음과 상관없이 올해도 실제 기업들의 75.7%는 ‘먹고 마시는 송년회를 계획중’이라고 답했다는 거다. 영국 극작가 제롬은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들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해친다”고 했다. 가뜩이나 바쁜 연말에 원치도 않으면서 ‘아군’끼리 술로 내상을 입는 일은 피할 일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상사가 눈 딱 감고 “이번엔 술판 없는 송년회를 하자”고 한마디 하면 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