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곁에 두고 싶은 책] 쥐떼 우글거리는 위험한 도시…극한의 절망과 싸우는 인간 군상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 갑자기 죽은 쥐들이 넘친다. 사망자 속출에도 불구, 시장과 공무원들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질병은 확산되고 급기야 페스트란 선포와 함께 도시는 봉쇄된다.

알베르 카뮈 작 ‘페스트’는 이처럼 닫힌공간에서 10개월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룬다. 의사 리유가 서술하는 형태의 소설은 페스트가 닥친 순간부터 물러갈 때까지의 사건과 끔찍한 재앙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전한다. ‘4월 28일, 통신이 죽은 쥐 8000마리를 수거했다고 발표하자 도시의 불안은 절정에 달했다. 쥐들의 사건을 갖고 그렇게 떠들어대던 신문이 이젠 아무 소리도 없었다. ’

오도가도 못한 채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막막한 심정과 무력함을 그린 대목은 44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탁월한 감성과 관찰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람들은 메마른 추억에 매달려 산다기보다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까닭없이 괴로워하거나 희망을 품었다. 차량 운행은 끊기고 사치품 가게는 문 닫았지만 극장과 카페는 만원이었다.’

작가는 또 죽음을 무릅쓰고 페스트에 맞서는 이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나타낸다. 보건대 구성을 처음 제의한 타루는 판사 아버지의 사형선고를 본 뒤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인물이다. 그랑은 마음 속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던 소시민이다. 기자 랑베르는 어떻게든 도시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던 이방인이다. 이런 이들이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뭉친다.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뭣 때문에 발벗고 나서느냐는 리유의 물음에 타루는 답한다. “이해하자는 거지요.” 랑베르가 관념 때문에 죽는 사람들에게 신물이 난다며 영웅주의는 질색이라고 말하자 리유는 대꾸한다. “이 일은 영웅주의와 관계 없어요. 그저 성실성의 문제지요. 페스트와 싸우는 방법은 성실성뿐이니까요.” 성실성이 뭐냐는데 대한 답 또한 간단하다.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겁니다.”

[박성희의 곁에 두고 싶은 책] 쥐떼 우글거리는 위험한 도시…극한의 절망과 싸우는 인간 군상
랑베르는 마침내 탈출할 수 있게 됐을 때 남겠다고 선언한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건 부끄러운 일 같아서요.” 책의 끄트머리에 리유는 또 이렇게 고백한다.

‘보건대를 실제 이상으로 중시할 생각은 없다. 훌륭한 행동을 칭송하다 보면 자칫 악의 힘에 찬사를 바치는 꼴이 된다. 훌륭한 행위는 드물고 악과 무관심이 세상의 원동력인 수가 더 많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악은 무지에서 비롯되고, 선의도 악의처럼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하버드생이 가장 많이 산 책이요, 옵서버 지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으로 꼽은 이유가 뭔지 알려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