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선이 무너진 이유…'평민 담론장' 출현 때문
조선은 성리학의 사회였다. 성리학 기반의 강력한 통치체제 덕분에 500여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 성리학은 종교이자 정치요 지식이었다. 그러나 공고했던 조선도 결국 무너졌다.

《인민의 탄생》(민음사, 2만5000원)의 저자인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 원인을 ‘평민 담론장’의 탄생에서 찾는다. 한글의 확산으로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새로운 인민’이 등장해 지식, 종교, 정치 분야에서 ‘평민 공론장’의 출현을 촉발했다는 데 주목한다. ‘인민은 통치의 객체이자 교화의 대상’이라는 조선 사회의 기본 명제가 유효성을 상실하고, 인민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순간 중세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한국 사회를 재단하는 데 절대적으로 의지해온 ‘서양산 사회과학’을 과감히 벗어버린다. 기존의 연구 경향에서 멀리 떨어져 조선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며 한국 사회의 역사적 심층에 접근한다.

그는 “토크빌의 민주주의론, 로크와 루소의 사회계약론, 베버의 사회경제론 등 서구 사회이론을 동원해 한국 사회 현상을 분석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한국 사회의 표층은 그런대로 보였지만 심층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암흑상자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조선의 백성이 어떻게 현대의 시민으로 진화했는지를 분석한 장기연구의 1권이다. 송 교수는 2년 뒤 후속편 ‘시민의 탄생과 근대’를 펴낼 계획이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