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로 교수의 거꾸로 증시 이론] "베타 높다고 수익률 높지 않다"
[문병로 교수의 거꾸로 증시 이론] "베타 높다고 수익률 높지 않다"
“말씀하신 포트폴리오의 ‘베타(β)’값이 어떻게 되나요?”

알고리즘 투자에 관한 필자의 강연을 들은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질문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베타는 이미 오래전에 실증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밝혀진 이론이다. 죽은 이론이 업계에서 끈덕지게 숨을 쉬고 있다.

20세기 후반 30년간 미국 경제학계의 주류를 형성한 세력은 효율적시장가설(EMH) 학파이고 베타는 이 학파의 대표적 산출물 중 하나다. 베타는 지수 대비 개별 종목의 변동성을 수치화한 지표다. 이 학파의 상징적 인물인 MIT의 폴 새뮤얼슨은 1970년 미국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효율적 시장이란 가격이 모든 정보를 즉시, 충분하게 반영하는 시장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 학파가 한발 더 나아가 시장이 실제로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력으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 시장은 항상 가치를 정당하게 반영하고 고평가주와 저평가주도 존재할 수 없다. 효율적시장가설을 이론적 배경으로 해서 탄생한 투자기법이 인덱스펀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수익은 변동폭에 전적으로 연동돼 베타가 높은 종목은 시장이 상승하면 더 높은 수익을 얻고, 시장이 하락하면 더 많은 손해를 본다. 이를 일차함수로 나타낸 것이 ‘자본자산가격결정모델(CAPM)’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CAPM의 타당성을 의심하게 하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됐지만, 이 이론의 대표인 스탠퍼드대의 윌리엄 샤프는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샤프의 수상으로 슬픈 입장에 처한 사람이 시카고대의 유진 파머다. 파머는 1970년, 72년, 73년 CAPM의 핵심인 베타의 타당성을 지원하는 유명한 논문들과 함께 이 학파를 미국의 주류 경제학파로 만드는 데 기여해 EMH 학파의 산파로 불린다. 샤프의 수상으로 파머는 사실상 수상 기회가 없어졌다.

이로부터 2년 후 파머가 또 하나의 유명한 베타 관련 논문을 발표한다. 요지는 검증 결과 CAPM의 핵심인 베타가 의미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이 산파 역할을 한 이론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베타의 죽음’ ‘베타의 패배’ 등의 제목을 달았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2004년 파머는 다시 한 편의 논문을 발표, 베타에 확인사살을 한다. 논문 결론부에서 파머는 이렇게 말한다. “CAPM은 그 이론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한 번도 실증적으로 성공한 적이 없다.” 코미디 같은 역사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한국 증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베타는 수익률을 설명하지 못한다. 2004~2010년 국내 증시 종목들을 직전 3년 평균 베타 크기별 10개 그룹으로 나눠 월평균 수익률을 산출한 결과 베타가 10인 그룹의 수익률은 1.04%로 베타가 1인 그룹의 수익률(1.11%)보다 오히려 낮았다.

아직도 재무관리, 증권투자 교과서와 각종 자격시험 목록에는 CAPM이 버젓이 포함돼 있다. 증권사의 연례 기업보고서에는 빠짐없이 베타 수치가 계산돼 한자리를 차지한다. 베타가 부정된 1992년 이후 논문들을 보면 CAPM이 주가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anomaly(이례적 현상)’라고 부른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론이 무소불위의 권위를 얻었는데 그것이 맞지 않는다고 이례적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역사가 이례적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