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 사회는 ‘지성 대 반(反)지성’의 프레임으로 봐야 한다는 바른사회시민회의의 엊그제 토론회는 여러모로 되새길 만하다. 내편이면 무조건 옳다는 진영논리에 함몰돼 보편타당한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마저 상실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국회의사당 안에서 현역 의원이 최루탄을 떠뜨리고도 당당하고, 경찰서장을 폭행하고도 되레 구타 유발자로 몰아붙인다. 가진 자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듯, 시민들에게도 권리만큼이나 책임과 의무를 존중하는 ‘시티즌 오블리주’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의 반지성 기류는 2000년대 형성돼 참여정부의 반엘리트주의를 등에 업고 급속히 확산됐다. 권위는 기득권의 동의어로 치부됐다. 철학이 없는 실용정부에서 반지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광속도로 퍼져나가 제어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권위가 사라진 자리는 나꼼수식 조롱과 막말이 꿰찼다. 그 덕을 보려던 제1야당 대표마저 부메랑을 맞는 판이다. 반지성 세력은 단문과 막말의 정치적 이득을 간파했기에 내년 총선·대선은 반지성을 넘어 몰(沒)지성이 만개하는 이벤트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더 큰 문제는 반지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과거 황우석 사태 때만 해도 계몽 없이 계몽의 시대가 끝났으며, 한국 인터넷문화는 합리적 사유가 없다고 비판한 좌파 지식인이 있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괴담처럼 정치적 허위가 진실을 몰아내는 현실에는 침묵한다. 우파 지식인들의 지성은 퇴화하고 기회주의와 눈치보기만 남았다. 지식인 스스로 자초한 위기다.

반지성의 귀착점은 극단주의와 집단 광기였음은 역사가 입증한다. 가장 많은 철학자를 배출한 독일이 나치로 달려간 것이나, 지성을 돼지우리로 집어넣은 중국의 문화혁명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맹은 사라졌지만 시민의식 몰각이라는 또 다른 문맹의 시대다. 엊그제 여의도공원을 가득 메운 데 이어 내일은 광화문에 10만명을 모은다고 한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형성하기도 전에 대중독재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