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만든 獨브란덴부르크 "특허료? 없어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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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 잡스는 '아이팟'으로 떼돈 벌었지만…
‘애플’ 스티브 잡스의 재기 발판이 됐던 ‘아이팟’이 나온 지 올해로 10주년이 됐다. 아이팟은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 아이폰, 아이패드에 앞서 내놓은 ‘i 매직’의 첫번째 제품이다. 이 기기는 음원재생기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3억대 이상 팔렸다.
아이팟은 저용량 오디오 파일인 ‘MP3(MPEG-1 Audio Layer 3)’를 작동하는 제품이다. 사실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도 MP3플레이어는 있었다. 하지만 아이팟만큼 단순하고 유려한 디자인을 지닌 제품은 없었다.
아이팟의 대성공으로 잡스의 신화가 시작됐지만 아이팟의 ‘전제’가 되는 MP3의 개발자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MP3는 오디오 압축 분야를 전공한 독일의 전기공학자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가 만들었다. 사실 그는 애초에 휴대용 음악재생기기를 위해 MP3를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전화선으로 음악을 보내는 방법을 연구했던 그의 목표는 음악 파일을 단순히 압축하는 것이 아니었다. 음원 데이터 양을 가청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첫 연구 대상은 수잔 베가의 노래 ‘톰의 다이너(Tom’s Diner)였다. 연구는 유럽 최대 응용기술연구소인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 진행됐고 1989년에 MP3가 탄생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표준회의(IEC)의 최종 승인은 1992년에 받았고 공식적인 논문은 1993년에 나왔다.
지금도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는 MP3로 돈을 벌진 못했다. 특허권은 프라운호퍼 연구소에 있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2001년 9월부터 MP3에 대한 로열티를 받기 시작했다. MP3로 창출되는 수익의 1%를 요구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았다. 더구나 이동통신 기술인 CDMA 등으로 매출의 5% 이상을 요구하는 퀄컴과 비교하면 매출이 아닌 순익의 1%는 거의 부담이 없는 수준이다.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가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전 제 은행 구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제가 만든 결과물과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해 만족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산업의 역사에서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처럼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IT 혁명을 이끈 이들은 수두룩하다. 애플을 세상에 알린 컴퓨터 ‘애플1’을 설계한 스티브 워즈니악, 마우스를 만든 더글러스 엔젤바트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 등은 대표적이다. 엔젤바트도 한 인터뷰에서 “로열티는 없지만 인류 진보에 공헌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아이팟은 저용량 오디오 파일인 ‘MP3(MPEG-1 Audio Layer 3)’를 작동하는 제품이다. 사실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도 MP3플레이어는 있었다. 하지만 아이팟만큼 단순하고 유려한 디자인을 지닌 제품은 없었다.
아이팟의 대성공으로 잡스의 신화가 시작됐지만 아이팟의 ‘전제’가 되는 MP3의 개발자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MP3는 오디오 압축 분야를 전공한 독일의 전기공학자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가 만들었다. 사실 그는 애초에 휴대용 음악재생기기를 위해 MP3를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전화선으로 음악을 보내는 방법을 연구했던 그의 목표는 음악 파일을 단순히 압축하는 것이 아니었다. 음원 데이터 양을 가청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첫 연구 대상은 수잔 베가의 노래 ‘톰의 다이너(Tom’s Diner)였다. 연구는 유럽 최대 응용기술연구소인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 진행됐고 1989년에 MP3가 탄생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표준회의(IEC)의 최종 승인은 1992년에 받았고 공식적인 논문은 1993년에 나왔다.
지금도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는 MP3로 돈을 벌진 못했다. 특허권은 프라운호퍼 연구소에 있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2001년 9월부터 MP3에 대한 로열티를 받기 시작했다. MP3로 창출되는 수익의 1%를 요구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았다. 더구나 이동통신 기술인 CDMA 등으로 매출의 5% 이상을 요구하는 퀄컴과 비교하면 매출이 아닌 순익의 1%는 거의 부담이 없는 수준이다.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가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전 제 은행 구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제가 만든 결과물과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해 만족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산업의 역사에서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처럼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IT 혁명을 이끈 이들은 수두룩하다. 애플을 세상에 알린 컴퓨터 ‘애플1’을 설계한 스티브 워즈니악, 마우스를 만든 더글러스 엔젤바트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 등은 대표적이다. 엔젤바트도 한 인터뷰에서 “로열티는 없지만 인류 진보에 공헌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