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부터 달랐다. 패딩 점퍼에 목도리, 청바지 차림이었다. “양복 잘 안 입어요. 극장, 연습실, 강의실 이렇게 다니는데 양복 입을 일이 별로 없죠. 워낙 편안한 걸 좋아해서요.” “혹시 신발은?”하고 물었다. “운동화 신고 왔어요.” 문화 CEO(최고경영자)다웠다.

‘난타’의 제작자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54)를 서울 삼성동 남도 음식점 ‘예향’에서 만났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안 외모. 1970~80년대 하이틴 스타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집은 탤런트 임예진 씨가 소개해줬어요. 사장님하고 친구래요. 음식이 아주 정갈하고 맛있어서 강남길 김수철 강석우 씨 등과 모임할 때 가끔 와요.”

자리에 앉자마자 재떨이부터 찾는다. “여대 학장으로 부임하면서 끊어야지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연습장에 앉아 있으면 답답하니까, 대본 들여다 보면 피우게 되고. 그래도 줄이기는 했어요.”

“뭘 해드릴까요.” “전하고 갈치조림하고 나중에 굴비 조금 해서 먹죠 뭐.” “갈치조림하고 굴비 다 못드실 텐데….” “그럼 전하고 굴비만 할까.” 메뉴를 고르며 김정순 예향 사장과 나누는 대화가 정겹다.

남도음식을 아주 좋아하나 보다. “특별히 남도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굴비를 좋아하죠. 이 집이 굴비를 잘하거든요. 어렸을 때 밥 말아서 굴비 얹어먹고 그랬잖아요. 삼합보다는 굴비 육전 갈치조림 이런 걸 즐겨 먹습니다. 제가 새우 조개 회 같은 날것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는 배우이자 CEO다.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장과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문화 관련 포럼의 대표로 활동하고 매주 방송에도 출연한다. 스케줄 관리가 궁금해졌다. “쪼개 쓰는 거죠. 마음을 여유롭게 갖기 위해 하루를 3일로 생각해요. 한 달을 30일로 생각하면 쉬는 날이 별로 없지만 90일로 생각하면 80일 일하고 열흘 쉴 수 있어요. 또 오전 오후 밤에 할 일을 3등분합니다. 제가 술을 안 마시니까 남들에 비해 밤 시간을 많이 버는 것 같아요.”

그는 일정도 10분, 20분 단위로 잡는다. “일하다 보면 자투리 시간이 아깝더라고요. 12시, 2시, 3시 이렇게 일정을 잡으면 중간에 10분, 20분이 남아도 제대로 못 쓰잖아요. 차라리 12시20분, 1시10분, 2시5분 이렇게 잡아서 3시에 일을 끝내 놓고 제 시간을 갖는 거죠.”

시간관리법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노하우다. “인기가 있을 때는 연극, 드라마, 영화, MC, DJ 등 4~5가지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간관리가 몸에 뱄죠. 지금도 스케줄 관리는 제가 직접 해요.”

그는 잘나가던 아역스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65년 KBS 라디오 프로그램 ‘은방울과 차돌이’ 진행자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배우, 탤런트, 쇼 프로그램 진행자, 라디오 DJ 등으로 활동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뒤에는 그늘도 있었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중학교 때부터 소년가장 역할을 했다. “집이 빚쟁이들에게 넘어가 단칸 셋방으로 돌아다닌 적도 있었어요. TV에 나오고 하니까 부잣집 아들인 줄 아는데 미아리 산동네에 살았어요.”

그는 고1 때 드라마 ‘여로’를 끝으로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학업에 전념했다. 집안이 어려우니 상대에 진학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의 재수를 거쳐 들어간 곳은 외국어대 아랍어과. 중동 붐이 불 때였다. 부전공으로 무역학을 하면 좋을 거라는 주위의 권유가 있었지만 외대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연기가 자신의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2학년 1학기 때 대학을 그만두고 ‘76극단’에 들어갔다. 그는 지금도 해마다 1편 이상 연극이나 드라마에 출연한다. 배우가 천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뮤지컬을 처음 만든 것은 1977년이었다. 신촌의 소극장에 ‘루브’라는 작품을 올렸다. “1970년대에 뮤지컬은 거의 없었어요. 용산 미8군에서 카투사로 근무하는 친구를 따라가 영화를 자주 봤어요. 뮤지컬 영화를 보면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1980년대 들어 그는 영화 드라마 출연은 물론 ‘젊음의 행진’ 등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눈은 세계로 향해 있었다. 1985년 그는 부인 박찬실 씨와 약혼식을 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브로드웨이에서 본 연극과 뮤지컬 공연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다양한 문화가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상적이었죠.”

미국에서 보낸 3년6개월은 ‘난타’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1997년 10월 초연된 ‘난타’는 국내 최장기 공연, 최다 관객 등 신기록을 세우며 시대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2003년엔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1년6개월 동안 장기공연했다.

“아시아 작품으로 장기공연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수익 면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는 점이 ‘난타’의 생명력을 길게 가져가는데 플러스 요인이 됐죠.”

난타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이자 관광상품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900만명 중 110만명이 공연을 봤는데 그 중 70만명이 ‘난타’ 관객이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 100만명에게 보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난타’라는 킬러 콘텐츠를 바탕으로 여러 작품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죠. 정말 고마운 작품입니다.”

낙지 숙회가 들어왔다. 그는 “남들이 보면 매일 이렇게 잘 먹는 줄 알겠네. 점심 때 보통 짜장면 짬뽕 먹는데”라며 요리를 반긴다.

뮤지컬로 화제를 바꾸자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뮤지컬협회 이사장인 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년 예산안에 뮤지컬 지원금 30억원을 편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뮤지컬 스타인 남경주, 박건형, 김소현을 데리고 기획재정부를 찾아가 뮤지컬계의 현실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라이선스 작품 말고는 흥행이 잘 안된다는 겁니다. 창작 뮤지컬이 1년에 100편가량 나오는데 조금만 도와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작품이 나와요. 공연시장 규모도 너무 작습니다. 시장을 넓히려면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해외에 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그는 창작 뮤지컬의 미래를 밝게 봤다. “1970~80년대는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봤지만 지금은 우리 영화 점유율이 높잖아요. 제가 DJ할 때 10곡 중 8곡은 팝송을 틀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역전됐죠. 같은 퀄리티라면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 콘텐츠를 찾게 됩니다. 창작 뮤지컬도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영화나 가요처럼 사랑받는 때가 올 겁니다.”

그는 “실력 있는 뮤지컬 배우는 많지만 작가나 작곡자는 많지 않다”며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낼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인생의 동반자가 두 명 있다. 동갑내기 부인과 휘문고 동창인 이광호 공동대표다. “광호도 부부가 동갑이에요. 모두 원숭이띠죠. 네 명이 모이면 원숭이 네 마리가 모였다고 하죠.”(송 대표는 양력으로 57년 1월생. 음력으로 56년 12월생이다.)

이 대표와 만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공연하는데 돈 꿔줬다가 코가 꿴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섭렵하고 돌아와 1989년 극단 ‘환 퍼포먼스’를 세우고 뮤지컬 ‘고래사냥’을 만들 때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이 대표가 도움을 줬고, 두 사람은 1996년 PMC프로덕션을 함께 설립했다. 동업 15년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분업과 신뢰라고 했다. 작품 기획과 제작은 송 대표, 경영과 회계는 이 대표가 맡고 있다.

그의 집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타운하우스. 하지만 주중에는 여의도 오피스텔에서 지낸다. 회사를 광화문에서 삼성동으로 옮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늘 미안해요. 그래서 올여름에 한달 동안 유럽지역과 미국 여행을 갔어요. 2013년 안식년을 맞으면 회사도 1년 쉬면서 외국에 나가 공연도 실컷 보고 책도 읽고 싶습니다.”

그는 2~3년 안에 PMC프로덕션 주식을 상장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당장 큰 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상장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있지만 공연을 산업화하기 위해 선도 기업이 상장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기 때문에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행복한 삶’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성공이 꼭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삶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식당에서 동네 조기축구회원들이 경기에 이긴 후 기분 좋게 회식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조기축구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성공에 큰 비중을 두면서 여러 문제점이 나왔다”며 “기성세대가 자식들에게 성공을 강요할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지혜를 나눠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이 해야 할 일도 지쳐 있는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지수가 높아지면 건전한 에너지가 만들어져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겁니다.”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의 단골집 예향

32년 남도음식 지킴이… 굴비정식 · 갈치조림 등 인기

서울 삼성동의 선릉역과 포스코사거리 사이에 있는 ‘예향’은 맛깔스러운 전라도 음식으로 유명한 한정식집이다. 광주 남동에서 17년, 서울에서 15년간 남도음식을 해온 전통 있는 집. 전라도 각지에서 올라온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 낙지와 홍어는 무안, 꼬막은 벌교, 나머지는 주로 여수에서 올라온다.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아 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쇠고기를 얇게 저며 찹쌀옷을 입힌 뒤 달걀을 씌워 노릇하게 구워낸 육전(6만원)이 대표 메뉴다. 소스에 찍어 파무침 등과 함께 먹는다. 맛이 부드러우면서 고소하다. 굴비정식(3만9000원), 갈치조림, 병어조림도 인기 메뉴다. 홍어삼합(8만원)과 산낙지, 낙지숙회, 문어, 전복도 있다. 식사에는 여러 김치와 젓갈, 장아찌 등 10여가지 밑반찬이 나와 입맛을 돋운다. (02)565-0033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