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와 함께 세계 경제 전망을 암울하게 하던 미국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가 ‘기우(杞憂)’일지 모른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고공행진하던 실업률은 지난달 32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도 되살아나고 있다. 제조업지수 등 최근 발표된 각종 경제지표가 미국 경기의 완만한 회복세를 가리키면서 증시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인 데다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남아 있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실업률 8개월 만에 9% 밑으로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1월 미국 실업률은 2009년 상반기 이후 최저 수준인 8.6%를 기록했다. 실업률이 9% 밑으로 떨어진 건 지난 3월 이후 처음이다. 9월 9.1%에 달하던 실업률은 10월 9.0%로 떨어지더니 11월에는 0.4%포인트 내려오며 하락폭이 커졌다.

일자리도 12만개(비농업 분야) 늘어났다. 공공부문에서는 2만개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민간 기업들이 14만명이나 고용을 늘린 때문이다. 노동부는 9월과 10월에도 당초 집계된 것보다 일자리 수가 7만2000개 더 많이 생겼다고 수정했다. 미국 고용시장이 우려했던 것보다 개선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1년 이상 실업상태가 지속된 장기 실업자가 여전히 570만명에 달하는 데다 실업률이 낮아진 주요인 중 하나가 31만5000명이 구직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소비·제조 등 경제지표 모두 상승세

그러나 실업자 수가 한 달 새 59만4000명이나 줄어든 것은 분명히 호재다. 특히 실업률 하락과 함께 소비와 제조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은 더욱 고무적이다.

11월 미국 자동차 판매는 10월에 비해 14%나 늘어났다. 연말·연시 쇼핑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추수감사절 연휴 소매 매출도 작년보다 16% 늘어난 524억달러에 달했다. 이에 힘입어 11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10월보다 15.1포인트 오른 56을 기록해 지난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경제조사단체인 콘퍼런스보드가 지난달 29일 밝혔다. 6개월 뒤 경기를 예상하는 경기선행지수는 전월 50.0에서 67.8로 상승했다. 소비심리가 살아나자 기업들의 제조활동도 늘어나는 선순환이 생겨나고 있다. 11월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의 제조업지수는 52.7을 기록해 10월 50.8에 비해 1.9포인트 높아졌다.

◆경기부양 카드 접나

이중침체 우려가 줄면서 정부의 경기부양 필요성도 줄어든 건 악재다. 미국 중앙은행(Fed) 내에서 3차 양적완화(국채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 등 부양책에 반대하는 매파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미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났지만 유럽이라는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일자리가 늘었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소식이지만 미국의 실업률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