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행상 출신 CEO의 섬유사랑
부산 부전시장에서 양말 행상을 했던 기업인의 끝없는 섬유 사랑이 작은 화제를 낳고 있다. 서울 잠실에 있는 기능성 섬유업체 벤텍스의 고경찬 대표(50·사진). 그는 각 대학에서 섬유공학과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순수 ‘섬유공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섬유산업연합회를 통해 내년부터 연 3000만원씩 10년간 3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섬산련을 통해 각 대학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고 대표는 “섬유는 인류 최초이자 최후까지 지속될 산업이고 연구·개발 여지가 무궁무진한 분야”라며 “섬유 분야 전공자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주위로부터 받은 도움을 되돌려준다는 생각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대표의 ‘섬유사랑’은 스스로의 공부로도 연결된다. 성균관대 섬유공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유기소재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이번에는 피부 의학에 도전한다. 최근 중앙대 의학대학원 융합의약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았다.

고 대표는 “이 과정은 독특하게 의학대학원에서 의학을 공부하되 학위는 의학박사가 아닌 이학박사를 받는 코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내년 3월부터 3년간 피부의학을 공부하며 사업과 학문을 병행한다. 피부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이를 섬유와 접목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섬유는 제2의 피부라고 하는데 섬유에 대해선 25년 이상 연구했고 이제는 피부의 세포와 조직 모공 등을 공부해 피부 같은 섬유를 개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출신인 고 대표는 집 형편이 어려워 성균관대 재학 중 방학 때마다 부산에 내려가 부전시장에서 노점상과 리어카 행상 등을 했다. 꿈 많은 대학생 시절 친구들은 피서차 부산으로 놀러갔지만 그는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내려간 것이다. 그가 주로 취급한 제품은 양말 과일 가방 등이었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어다 팔았다.

이를 통해 시드머니를 만든 뒤 아이템을 간이샤워기로 바꿔 등짐을 지고 부산진시장 등을 돌며 판매했다. 간이샤워기는 수도꼭지에 연결해서 쓰는 즉석식 샤워기다. 그가 “시원한 샤워기 있어요”라고 외칠 때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시장상인들이 주문했다.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점차 행동 반경을 확대해 울산 창원 등지에서도 팔았다. 시장과 길거리, 아파트단지, 그리고 장거리 시외버스 안이 그의 주된 영업활동 무대였다. “1980년대 중반 대학등록금이 40만원 정도 했는데 장사가 잘될 땐 하루에 10만원 번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여름방학 때 장사해 번 돈으로 1년 동안 학비와 책값 생활비로 썼다”고 덧붙였다.

고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코오롱에서 일한 뒤 1999년 서울 도곡동에서 직원 한 명과 함께 창업했다. 그 뒤 1초 만에 마르는 섬유인 ‘드라이 존’을 개발해 미쓰비시로부터 출자를 받았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70건에 이른다. 이 중 복합냉감성 원단 등 60여건은 특허 등록했다. 이 회사의 주거래처는 미쓰비시 등 일본업체와 노스페이스 뉴발란스 컬럼비아스포츠 데상트 펄이즈미 등 세계적인 유명 아웃도어 의류업체다. 종업원은 약 40명으로 늘었으며 지난해 매출은 207억원을 기록했다. 고 대표는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약 50% 늘어난 31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