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왜 극단에 끌리는가
지난 주말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무효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야당 인사들이 수천여명의 군중과 함께 종로 1가 차로를 점거했다. 서울역에서는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등의 연대체인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 주최대회가 열렸다. 지난달 30일에는 여의도광장에서 ‘나꼼수’ 집회가 있었다. 범야권의 FTA 반대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른바 ‘출구 없는 분노’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보수의 가치를 잊은 지 오래고, 미래를 향한 비전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생래적으로 맞지 않는 ‘억지 정책’들로 정체성마저 잃고 있다. ‘한나라당 텃밭’으로 여겨졌던 부산 지역 지지율까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출구 없는 분노와 '집단 극단화'

어느 쪽이든 중심과 균형을 잃고 극단(極端)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각기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자신의 틀에 상대를 끼워맞추려 하면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다양한 의견들은 ‘나쁜 생각’으로 치부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불안하고 가계는 위태롭다. 내년에 불어닥칠 선거 열풍까지 감안하면 걱정은 더 커진다. 미래를 위한 공약이나 발전적 대안보다 그저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포퓰리즘 공약(空約)’이 난무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을 심화시키는 도구 중 하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좋은 일로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것이야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불러오는 게 ‘카더라’의 폐해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넛지》의 저자로 유명한 캐스 R.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2005년 미국 콜로라도의 한 도시에서 실시한 실험이 흥미롭다. 다소 진보적 성향을 지닌 주민들과 보수적 성향을 지닌 주민들끼리 소그룹을 구성해 동성 간 결혼 등 몇 가지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하게 했더니 각 그룹 구성원들이 토론 전보다 더 극단적인 입장을 보였다. 진보 성향의 주민들은 동성 간 결혼에 대한 지지 입장을 더욱 굳혔고 보수 성향의 주민은 반대 입장을 더 강하게 표명했다.

'사회적 폭포 현상' 경계해야

선스타인 교수는 이처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이것이 사회의 극단주의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극단이란 무엇인가. 일의 진행이 끝까지 미쳐 더 나아갈 데가 없는 지경이 아닌가.

그는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요인 중 소수의 믿음과 관점이 다수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산되는 ‘사회적 폭포 현상(social cascades)’의 파장도 크다고 얘기한다. 사회적 폭포 현상이란 자신이 실제로 아는 정보를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이다.

집단 극단화와 사회적 폭포 현상은 인터넷 세상에서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 그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인터넷 토론방이 극단주의자들을 끌어모으고 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더욱 극단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그의 지적처럼 극단의 끝은 파멸이다. 어느 나라보다 ‘신명’과 ‘끼’가 많은 우리가 ‘집단 극단화’와 ‘사회적 폭포’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지 심각하게 돌아볼 때가 됐다.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