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땐 100억"…反시장 정책에 로펌 '특수'
국내 제약사들은 업계 사상 최대 규모로 예상되는 대(對) 정부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국제약협회는 지난달 이사장단 회의를 열고 김앤장, 세종, 태평양, 율촌 등 대형 로펌 4곳에 보건복지부의 약가 인하 고시에 대한 법적 대응을 맡기기로 했다. 광장도 수임을 위해 개별 제약사들을 접촉하고 있다.

이번 고시는 특허만료 의약품과 복제약의 최고가를 80%대에서 53.5%로 일괄 인하하는 내용으로, 이르면 이달 말 공포된다. 이 경우 제약사 연간 매출 13조원 가운데 2조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협회 소속사 193곳 중 약가 인하 대상인 제품을 만드는 곳은 130곳 정도. 이들을 대리하는 한 로펌 관계자는 “이번 고시는 각 의약품 품목에 대해 나오기 때문에 해당 제약사들이 각자 소송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반(反)기업’ ‘반 시장’으로 지목하는 정부 정책이 줄을 이으면서 로펌들이 특수(特需)를 맞고 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로펌들이 정부 정책과 관련해 기업들의 법적 대응 문제로 상담한 건수는 올 들어 3000~4000건으로 추정된다. 태평양 고위 관계자는 “올해 1000여건을 상담해 지난해보다 30%가량 늘었다”며 “이 가운데 30~40건은 실제로 소송이나 관련 준비 등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 시스템통합(SI) 기업은 지식경제부가 지난달 11일 발표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의 위법성을 알아보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 이 개정안은 총 55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들이 공공시장에 신규 참여하는 것을 전면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레미콘공업협회는 레미콘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해 최근 태평양에 법적인 문제점을 문의했다. 자문 의견서 작성에서 끝나면 1000만원 정도지만 소송 등에 돌입하면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비용이 들기도 한다. 약가인하 고시 소송은 승소시 1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펌의 역할은 ‘반기업 정책’이 입안될 때부터 시작된다. 법적인 문제점 분석과 입안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태평양은 지난달 ‘유통산업 근로자 보호법안’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서를 유통업계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을 평일과 토요일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7~10시까지로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영업의 자유와 소비자 결정권 침해라는 게 태평양의 분석이다. 광장은 2008년 백화점 진입차량에 대한 혼잡통행료 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서울시 조례안에 대해 법리상 문제점을 강조해 도입을 철회시켰다.

일단 법안이 통과되거나 통과가 확실시되면 법적 대응에 돌입한다. 로펌들은 복지부의 약가인하 고시가 발효되기 전에 집행정지 신청을 하고 고시 무효소송을 낼 계획이다. 헌법소원도 검토 중이다. 세종은 앞서 유사사례인 리베이트로 적발된 7개 제약사 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고시에 대해 지난 9월 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도 기업들이 최종적으로는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협회 등 유통업 5개 단체는 지난달 대규모 유통업법이 제정될 경우 헌법소원을 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 법적대응은 자제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기업들은 로펌에서 아무리 법적 문제점을 지적해도 정부에 밉보일까봐 섣불리 소송을 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