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역 1조달러' 샴페인은 잠시 보류를
우리나라가 이번주 초에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할 것이라고 한다. 무역규모가 100억달러를 기록한 1977년 이후 34년 만에 100배 성장한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대성과다. 반세기 전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의 하나였던 한국이 세계에서 무역규모가 1조달러를 넘는 9번째 국가가 된 것이다.

수출실적은 더 획기적이다. 지난 11월 말로 수출이 5000억달러를 넘어 한국은 세계 7대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1960년대 가발을 수출하던 나라가 이제 선박, 자동차, 반도체, 석유제품 등 중화학 공업제품을 주로 수출하고 있다. 올해 우리 반도체와 액정화면은 세계시장에서 50% 이상을 차지했고 선박, 디지털TV, 휴대폰 등은 각각 30% 이상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는 저성장, 고물가, 고실업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무역 1조달러 달성을 마냥 축하만 할 분위기는 아니다. 더구나 요즘 유럽과 미국 경제가 매우 어려운 국면에 놓이면서 우리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런 어려운 상황이 언젠가 끝난다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지속적으로 수출을 확대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특단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최근 미국,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세계 최대 선진국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선점효과를 통해 우리 수출을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중남미, 중동 및 아프리카지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이 지역은 미래 성장잠재력이 커 앞으로 수출확대에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 1조달러를 기록하면서 우리가 또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는 수출의 고용창출 효과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값싼 노동력을 투입해 수출상품을 만들 때와는 달리 요즘에는 수출규모가 늘어나도 일자리가 따라서 늘지 않는다. 더구나 오래 전부터 많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어 제조업 일자리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기업보다 고용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수출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나아가 우리 중소기업도 앞으로는 세계 모든 곳으로 부품을 납품하는 소위 ‘글로벌 공급자(global supplier)’가 될 수 있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고용효과가 큰 서비스산업도 생산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게 고용확대에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중국 등 신흥국의 내수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소비자서비스산업의 육성이 시급해 보인다.

끝으로 무역 1조달러 규모의 선진통상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수입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것 또한 필요하다. 다양한 수입품목이 물가를 안정시켜 주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입품의 국내 유통구조를 전반적으로 점검해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반세기 동안에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1조달러 무역국 지위를 앞으로 계속해서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국내시장 규모에 한계를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전 세계와의 무역을 통해서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하겠다.

박태호 < 서울대 교수·국제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