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애플의 신청을 기각하는 판결이 미국 법정에서 내려졌다. 미국에서의 재판이니만큼 삼성에 불리할것이라는 예상을 깬 판결이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지방법원은 “애플이 특허를 침해했다는 삼성전자 제품이 애플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irreparable harm)를 입힐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애플이 특허의 유효성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고 한 대목이다. 애플의 다자인 특허 자체가 사실상 무력화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이 재판정의 루시 고 판사는 최근 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1994년 나이트 리더가 만든 태블릿 원형이 애플 아이패드의 특허를 무효로 한다고 본다”고 이미 지적한 바도 있다.

공정성에 대한 고민, 특허권 보호와 남용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냉정한 법률적 판단이 돋보이는 판결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혁신과 경쟁을 통한 소비자 이익의 제고라는 지식재산권의 가치를 미국 법정이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법 정신은 국적이나 다른 어떤 범주로부터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다.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두고 사법주권 침해 운운하는 한국의 정치 판사들이 배워야 할 점도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ISD가 기본적으로 투자자를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정신에 입각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세계은행 총재가 미국인이고 그 산하에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가 있기 때문에 미국에 유리할 것이라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정치판사들의 눈에는 국적 인종 이념이 우선인 모양이지만 이는 보편적 법 정신을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주관하는 법정에서 한국인과 동남아시아인이 권리를 다툰다면 이들은 무조건 한국인 편을 든다는 것인가. 이러고도 판사이기를 주장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