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엘이라고 하면 보통 아스피린으로 대표되는 독일 제약회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바이엘의 뿌리는 염료로 출발한 화학부문이다. 세계 최초의 폴리우레탄 물질이 발견된 곳은 1937년 바이엘 실험실이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폴리카보네이트 물질을 발견하고 상용화한 것도 바이엘이다.

바이엘 머티리얼사이언스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조태휘 사장(51·사진)을 5일 경남 김해공장에서 만났다. 바이엘한국법인의 사업부문 3대 축 중 신소재부문을 맡고 있는 한국인 경영인이다. 제약부문은 닐스 헤스만 바이엘코리아 대표가 겸하고 있고 농화학부문도 외국인 사장이 맡고 있다.

바이엘은 신소재부문에서 한국 내 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2000년 김해에 있는 중소기업 (주)세원을 인수했다. 조 사장은 2005년부터 김해 공장을 중심으로 머티리얼사이언스 부문을 책임져 왔다.

1992년 바이엘코리아 폴리머 사업부로 입사한 그는 랑세스 본부에서 본부장으로 일하며 합성고무 쪽 경력을 쌓아왔으나 2005년 고무, 플라스틱 중심의 랑세스가 바이엘에서 분사할 때 랑세스로 가지 않았다. 당시 빌 프리드 하이더 바이엘코리아 회장의 신임 때문이었다.

조 사장은 “독일 본사에서 받는 최고급 원료를 기반으로 김해에서 제조하고 마케팅과 영업, R&D까지 이후의 모든 것을 이곳에서 진행한다”며 “LCD TV 부품인 확산판을 2007년부터 본격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2005년에 비해 매출이 3배 넘게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바이엘 전체 매출 101억 유로(15조3000억원) 중 30%가량은 머티리얼사이언스에서 나왔다. 바이엘코리아 매출도 마찬가지다.

김해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마크로론(Makrolon)이라는 폴리카보네이트 시트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투명하면서도 열과 충격에 강한 것이 강점. 용인~죽전지구 1㎞에 이르는 방음터널 지붕, 서울 중구 삼성화재 본사 옥외 광고판, 서울 강동구 암사시장 지붕 등이 모두 바이엘 폴리카보네이트 시트로 완성됐다.

LCD TV 부품으로 들어가는 확산판은 2007년 바이엘에서 개발하기 전엔 100% 일본에서 수입해 왔다. 조 사장은 “바이엘에 아시아 시장은 원료의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큰 기회”라며 “아시아엔 중국과 인도 등에 공장이 있지만 내년엔 중국 공장을 하나 추가하고 동남아 한 회사의 인수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중국, 인도처럼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다. 조 사장은 “소니, 캐논에 투자하던 바이엘이 국내 대기업들에 눈을 돌린 지 오래”라며 “한국 시장 자체를 넘어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전 세계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해에서 생산하는 70%는 수출 물량이다. 지난해 ‘5000만불 수출의 탑’도 받았다.

2007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김해 공장 생산라인을 증설한 조 사장은 “시장 환경에 따라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며 “기술 융합을 통해 TV에서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IT분야 수요에 대응하고 자동차, 철도의 경량화와 관련된 부품 생산으로도 확장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을 개조하고 증설하기 위해 기존 공장 주변 부지도 충분히 확보해뒀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친환경 건축과 함께 첨단 전자부품과 소재기술을 융합하는 신기술은 바이엘 본사가 추진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조 사장은 내년 경기에 대해서는 “유럽 위기 영향으로 지금까지 성장을 이끌어온 중국도 10%대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기술 선점을 기반으로 한 바이엘의 사업 계획은 되레 공격적”이라며 “어려울 때 잘해야 진짜 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해=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