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4만달러에 달하는 통상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선진국 반열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1960년대 이후 수출주도 정책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을 일궈 온 한국은 선진국 평균 속도보다 빠르게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는 물론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경기 회복을 이끈 건 언제나 수출이었다. 무역 2조달러 달성과 세계 무역 5강 진입을 위해선 선진국 중심의 시장 공략에서 벗어나 동유럽 중동 중남미 등 개도권 지역에 대한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역 1조弗 시대] 위기때 더 빛난 수출의 힘…'1000억弗→1조弗' 日·英보다 빨라

◆무역 1조달러 세계 9번째 달성

무역 1조달러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1988년 1000억달러를 돌파한 뒤 1조달러까지 오는 데 23년이 걸렸다. 무역 1조달러 고지를 밟은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에선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20년)과 중국(16년)을 제외하고 프랑스(31년) 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30년) 영국(29년) 독일(25년) 등을 앞질렀다. 지난 10년간(2001~2010년) 연평균 무역규모 증가율도 10.4%로 세계 평균(8.8%)을 크게 웃돌았다.

수출만 놓고 보면 한국은 세계 7강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00만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은 올해 5570억달러로 14만배 이상 커졌다. 세계 8번째로 수출 5000억달러를 돌파했고, 한국에 앞서있던 이탈리아를 제쳤다. 한국에 앞서 수출 5000억달러를 달성한 7개국은 100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늘리는 데 평균 20.1년이 소요됐지만 한국은 이보다 4년 적은 16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지경부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1조달러 달성 전망이 엇갈렸지만 철강 자동차 석유제품 등 주력 제품의 수출 선전에 힘입어 조기 달성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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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인식변화가 원동력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국민은 물론 정부 공무원들조차 ‘수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1950년대 광목을 수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상당수 국민의 반응은 “돈 버는 것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부족한 광목을 해외에 내다팔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었다.수출 기업인에 대한 평판도 좋지않았다. 국내 노동자들이 땀흘려 생산한 제품을 외국에 내다파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였다.

수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확 바뀐 것은 1962년 수출 드라이브를 건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석유나 원자재 자본재를 사오려면 외화가 필요한데 방법은 수출밖에 없다”며 ‘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우리가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내다팔아야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사들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수출은 경제 버팀목

수출은 오일쇼크와 외환위기 속에서 국가 경제를 떠받친 견고한 버팀목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수출 덕분이었다.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를 동반했던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시기엔 해외건설 수주에 따른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차 오일쇼크 역시 정부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과 강력한 수출확대정책이 성장세를 이끌었다.

외환위기 때에도 정보기술(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이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의 기본 토대를 만들었다. 외환위기 전후 5년간 무역수지 추이를 보면 1993~1997년 470억달러 적자에서 1998~2002년 944억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