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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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채홍' 발간 김별아 씨
“봉빈은 유교사상에 따라 여성을 억압하던 시기에 사랑으로 저항한 인물입니다. 여성에게는 사랑 자체가 죄였던 당시에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굴레와 권력에 대한 저항이었죠.”
소설가 김별아 씨(42·사진)가 새 장편 《채홍》(해냄)을 펴냈다.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아내인 순빈 봉씨의 동성애 사건을 다룬 작품. 김씨는 궁중 스캔들의 주인공 정도로만 회자된 그녀에게 ‘난(暖)’이라는 아명과 성씨를 따른 ‘봉빈’이라는 이름을 주고 박제된 삶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순빈 봉씨가 패륜적인 음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묘사돼 있지만 행간을 읽다 보면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자기 욕망에 솔직한 여성이었다”고 말했다.
소설의 제목 채홍(彩虹)은 무지개라는 뜻.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 존재하는 무지개처럼 왕의 빛에 가려진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갈등, 질투 의미한다.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소설은 봉빈이 폐빈이 된 이후 친정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봉빈은 세자 향(문종)의 첫째 부인 휘빈 김씨가 폐출된 후 3개월 만에 세자빈으로 책봉된다. 문종은 아버지 세종을 빼닮아 명민한 데다 덕성스러웠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을 다독이고 사랑하는 데는 미숙했다. 문종의 사랑을 갈구하다 좌절을 거듭한 봉빈은 우연히 궁녀 소쌍을 만나 대식(對食)이라는 금기를 범하고 만다.
그동안 《미실》《논개》 등의 작품을 통해 역사의 행간을 파고들며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는 이 작품에서도 세종실록의 기록 한 줄에서 출발해 미처 말하지 못한 행간의 진실을 들춘다. 소설 속에는 질박한 우리말 어휘가 풍부하다.
“역사가 고답적이거나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도록, 우리와 똑같이 울고 웃고 사랑했던 당시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 장치가 우리말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전체 문장 속에서도 충분히 읽히는 ‘모국어의 신비’를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봉빈의 독백을 빌려 역사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지요. 아니, 애초에 못하지요. 그래서 사랑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각자의 기억으로, 제각각 다른 빛깔로….”
그는 앞으로 사랑 때문에 죽은 조선의 여인 두 명 정도를 더 발굴해 쓸 계획이다. “역사 자체가 남성 중심이고 강자와 승자의 기록이잖아요. 그것에 가려진 여성, 약자, 패자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싶어요.”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소설가 김별아 씨(42·사진)가 새 장편 《채홍》(해냄)을 펴냈다.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아내인 순빈 봉씨의 동성애 사건을 다룬 작품. 김씨는 궁중 스캔들의 주인공 정도로만 회자된 그녀에게 ‘난(暖)’이라는 아명과 성씨를 따른 ‘봉빈’이라는 이름을 주고 박제된 삶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순빈 봉씨가 패륜적인 음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묘사돼 있지만 행간을 읽다 보면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자기 욕망에 솔직한 여성이었다”고 말했다.
소설의 제목 채홍(彩虹)은 무지개라는 뜻.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 존재하는 무지개처럼 왕의 빛에 가려진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갈등, 질투 의미한다.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소설은 봉빈이 폐빈이 된 이후 친정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봉빈은 세자 향(문종)의 첫째 부인 휘빈 김씨가 폐출된 후 3개월 만에 세자빈으로 책봉된다. 문종은 아버지 세종을 빼닮아 명민한 데다 덕성스러웠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을 다독이고 사랑하는 데는 미숙했다. 문종의 사랑을 갈구하다 좌절을 거듭한 봉빈은 우연히 궁녀 소쌍을 만나 대식(對食)이라는 금기를 범하고 만다.
그동안 《미실》《논개》 등의 작품을 통해 역사의 행간을 파고들며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는 이 작품에서도 세종실록의 기록 한 줄에서 출발해 미처 말하지 못한 행간의 진실을 들춘다. 소설 속에는 질박한 우리말 어휘가 풍부하다.
“역사가 고답적이거나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도록, 우리와 똑같이 울고 웃고 사랑했던 당시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 장치가 우리말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전체 문장 속에서도 충분히 읽히는 ‘모국어의 신비’를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봉빈의 독백을 빌려 역사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지요. 아니, 애초에 못하지요. 그래서 사랑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각자의 기억으로, 제각각 다른 빛깔로….”
그는 앞으로 사랑 때문에 죽은 조선의 여인 두 명 정도를 더 발굴해 쓸 계획이다. “역사 자체가 남성 중심이고 강자와 승자의 기록이잖아요. 그것에 가려진 여성, 약자, 패자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싶어요.”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