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인 허민의 꿈 '현실로'…'야신' 김성근 감독으로 영입
“김성근 전 SK감독을 고양원더스 초대 감독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지난 9월15일 허민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가 한국야구위원회(KBO), 고양시와 함께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 창단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을 때만 해도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야구의 신’(야신)이라 불릴 정도로 국내 프로야구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린 김성근 전 SK 감독이 이제 막 출범하는, 그것도 프로야구단도 아닌 독립야구단 감독으로 갈 리 없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허 대표의 이 말은 현실이 됐다. 고양원더스는 5일 “김성근 감독이 초대 감독직을 수락했다”며 “김 감독에게는 프로야구 2군 감독급을 기준으로 최고 대우를 보장했고 기간에 관계없이 언제든 타 구단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계약했다”고 밝혔다.

허 대표는 김 감독 영입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직접 찾아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양원더스는 드래프트 미지명 선수와 임의탈퇴 선수, 자유계약 선수 등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기 위해 창단한 만큼 꼭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일본 진출 등을 놓고 고심하던 김 감독은 허 대표의 열정에 감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감독은 이날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후배들을 위한 마지막 의무라 생각하고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정보기술(IT)업계 희대의 기인으로 손꼽히는 허 대표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승부사로 통하는 김 감독은 서로 손을 잡게 됐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95학번인 허 대표는 90년대 말 서울대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게임회사를 차려 2005년 8월 던전앤파이터를 출시해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2008년 회사를 넥슨에 매각해 3000억원을 손에 쥔 뒤 돌연 미국 버클리 음대로 가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 중 너클볼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에 메이저리그 너클볼의 전설로 유명한 필 니크로(1997년 명예의 전당 헌액)에게 수백통의 이메일을 보내 결국 그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숱한 기행으로 화제가 됐던 그는 올 7월 소셜커머스업체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로 IT업계에 복귀한 뒤 9월에는 독립야구단을 창단해 다시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 감독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며 근성을 키웠고 평생 ‘지지않는 야구’를 추구했다. 1983년 OB베어스를 시작으로 태평양, 쌍방울, LG, SK 등 5개 구단 감독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구단을 비판하고 스타급 선수들을 질책하는 언행으로 구단 측과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팬들은 지지않는 야구를 추구하는 그를 ‘야신’이라 부르며 열렬히 환호했다. 2007년부터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를 이끈 그는 2010년까지 4년 동안 우승을 세 차례나 일궜지만 결국 구단과의 갈등으로 올 8월 중도 퇴진했다.

김 감독은 오는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창단식에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고양원더스는 김 감독과 함께 김광수 전 두산 1군 감독대행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고양 원더스는 KBO 리그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프로구단이다. 내년 1월부터 2월까지 전지훈련을 거친 뒤 내년 시즌부터 프로야구 2군 리그 팀들과 번외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