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구제금융기구  'ESM'  내년 조기 가동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기구를 조기에 상설화하기로 합의했다. 재정위기가 발생하면 신속히 지원해 위기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 유로존 재정통합을 위해 유럽통합조약을 개정,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한 국가에 대한 감독과 제재를 강화키로 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당초 2013년부터 도입키로 했던 유럽의 위기대응 시스템인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을 내년 조기 가동키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ESM’은 상설조직이라는 점에서 한시적 특별기구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다르다. 현재 EFSF는 4400억유로 규모이며 ESM의 기금 규모는 5000억유로 정도가 될 전망이다.

양국 정상은 이와 함께 유럽 재정통합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유럽통합 조약인 리스본조약을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유로존은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고 유럽은 신뢰를 회복해야 할 처지”라며 “이를 위해 양국은 유럽통합조약을 개정하는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프랑스와 독일의 합의는 매우 완벽하다”며 “조약 개정은 오는 9일 (EU 정상회담) 이전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에 제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약이 개정되면 재정적자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3% 미만으로 유지하지 못하면 회원국에 ‘자동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당초 논의됐던 개별 국가에 대한 예산 통제는 철회했다. 회원국이 마련한 예산안에 대해 유럽위원회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현실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럽위원회가 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신 각국이 균형재정으로 갈 수 있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EU 27개 전체 회원국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유럽통합조약 개정에 많은 시일이 걸리고 반대의견도 적지않은 만큼 상황에 따라 유로존 17개국만 우선적으로 조약 개정을 통해 재정통합을 시도하는 방안도 병행키로 했다. 메르켈 총리는 “조약 개정은 EU 회원 27개국 모두가 참가해야 하지만 필요에 따라 유로존 17개국만 따로 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양국 정상은 그러나 유로존 공동 채권발행 계획인 유로본드에 대해선 도입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과 프랑스는 유로본드 발행이 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또 유럽중앙은행(ECB) 기능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자세한 합의사항을 헤르만 반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서한으로 전달키로 했다.

이날 유로존 핵심국가인 독일과 프랑스가 재정통합에 원론적 합의를 이루고 그 첫발을 내딛기로 함에 따라 조만간 EU집행위 등이 유로존 각국의 재정상황을 점검하는 감시기능을 부여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이날 독일과 프랑스 양국 정상의 합의대로 재정통합이 빠르게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U 전체 회원국은 물론 유로존 내에서도 재정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유로존 전체가 사실상 메르켈에게 반기를 든 상황에서 계획대로 유럽통합조약 개정을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김동욱/장성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