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트레스 없는 직장?
필자는 1970년대 초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40여년 동안 거의 2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취업 안내를 도왔다. 업무상 많은 회사를 상대하던 터라 믿을 만한 직원을 구하는 회사와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을 맺어주는 일이 심심찮게 생겼다. 결과가 좋았던지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무료봉사지만 나름 원칙을 갖고 주선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 아들과의 취업상담에서 그가 말하는 조건을 듣다 보니 최근 사회문제인 청년실업의 이면을 보게 됐다. 친구 아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1년 정도 대형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둔 상태였으며, 그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조건은 출퇴근 시간이었다. 개인생활을 위해서는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했다. 두 번째 조건은 연봉으로 자기 동창들과 비슷한 수준의 직장을 요청했다. 좋은 직장을 원하는 마음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이니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다음같이 조언했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에게 출퇴근 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 회사가 바쁜 경우에는 야근도 해야 하며,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있다. 따라서 좀 더 가치가 있고, 보람 있는 인생을 추구한다면 출퇴근 시간은 단순한 규정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연봉은 회사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받아내는 것이다. 너의 능력과 시간을 회사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이 연봉이다. 회사가 너의 능력과 수고를 높게 평가하면 연봉은 높게 책정될 것이다. 그러나 너에 대한 평가가 낮으면, 인상은 고사하고 해고당하는 운명에도 처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그도 많은 부분을 수용했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세 번째 조건을 듣고는 기가 막히고 말았다.

그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직장’이었으면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아버지 얼굴만 떠올랐다. 가난을 극복하고 공기업의 임원으로 정년을 앞둔 친구, 그의 아들 입에서 나온 말이 ‘스트레스가 없는 직장’이라니 정신이 아찔했다. “그런 직장이 있으면 내가 가겠다”라고 얼버무리고 황급히 대화를 마쳤다.

직장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생활에도 인간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특히 구성원 서로가 경쟁 상대인 직장에서는 많든 적든 간에 스트레스는 수없이 있다. 친구 아들과의 상담을 통해서 청년실업의 구조적인 문제도 느꼈지만, 1970년대 이후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정신적인 가치를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제 겨우 2만달러에 턱걸이하는 나라에서 물질적 풍요로움만 물려주고, 위기 극복 능력을 가르치지 못한 부모세대에도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자녀들에게 인내심이나 헝그리정신을 전수시켜 청년실업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 세대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권오형 <한국공인회계사회장 kohcpa@kic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