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베시립박물관에는 흥미로운 비밀을 간직한 인물화가 한 점 있다. 주인공은 세로로 긴 족자형 화면 아래쪽에 묘사돼 있는데 얼굴 생김새가 도무지 동양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더부룩하게 턱수염을 기른 모습이나 뚜렷한 이목구비가 서양인의 골상학적 특성에 가깝다. 머리가 벗겨지고 수염에 서릿발이 내린 것으로 보아 초로에 접어든 인물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손가락 모양새다. 양손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 쳐들고 있는데 이는 부처가 중생에게 설법할 때 취하는 수인(手印·손가락 모양)이다. 생김새는 서양인인데 손모양은 부처의 그것이다. 왜 이런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 생겨난 것일까.

힌트는 도쿠가와 막부(1603~1867)의 종교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무로마치 막부 말의 혼란기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위협적이었던 불교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새로 유입된 기독교를 적극 옹호했다. 이런 정치적 후원을 업고 기독교는 지방 다이묘들 사이에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혼란을 수습하고 최후의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독교가 통치 기반을 다지는 데 위협이 되리라 판단하고 1612년 기독교 금지령을 내린 후 대대적 탄압에 나선다. 불교로의 개종을 거부한 자는 모조리 처형했고 거짓으로 개종한 자를 색출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성화를 밟고 지나가게 할 정도로 극심한 박해를 자행했다.

결국 살아남은 소수의 기독교도들은 겉으로는 불교신자 행세를 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비밀리에 성화를 제작해 예배 때만 꺼내서 벽에 걸었다. 그러나 예배현장을 들켰을 때를 대비, 위장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얼굴은 서양인, 손모양은 석가모니의 설법인을 한 수수께끼 같은 성화를 제작했던 것이다. 고베시립박물관의 ‘노사부도(老師父圖)’는 이렇게 위장된 성화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부 신자들이 대담하게도 이런 성화를 불화라고 속여 사찰에 시주했다는 점이다. 지바현 가쿠오지(覺王寺)에 걸려 있던 ‘산에서 내려오는 석가여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이 그림은 머리가 벗겨지고 왼손에 열쇠를 든 성 베드로를 그린 것이 틀림없는데 제목을 바꿈으로써 오랜 세월 사찰 벽의 한편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기독교도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탱화들 사이에 걸린 성인을 당당히 경배할 수 있었다.

위장된 성화는 숨막히는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려 했던 에도시대 일본 기독교도들의 눈물겨운 발자취다. 그 속에서 어떤 정치적 폭력도 억누를 수 없는 종교적 신념의 위대한 힘을 본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