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상시적 위기대응 시스템인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이 당초 예정보다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조기 가동된다. 5000억유로 규모 상설 위기대응 기금인 ESM은 당초 2013년 중순부터 4400억유로 규모의 현행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정위기로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와 독일도 안심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독일과 프랑스는 ESM 발족 시기를 1년 앞당기기로 했다.

5000억유로 규모 ESM으로 4400억유로 규모 EFSF를 교체하는 것은 임시기구를 비슷한 크기의 상설기구로 대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5월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EFSF는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금융을 금지한 리스본조약 때문에 ‘특수한 상황에 특정 조건하에서만 활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한시적 특별기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EFSF는 재정위기국에 대한 직접 구제금융에 제한이 있는 만큼 그리스나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에 제한적으로 대출을 시행해왔다. 대신 EFSF가 자체 국채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유럽통합 조약에 대한 일부 보완을 바탕으로 탄생한 ESM은 보다 적극적으로 재정위기국에 대출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독일 경제일간 비르츠샤프츠블라트는 “ESM은 유로존 각국이 의무적으로 분담한 납입자본을 기반으로 한다”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유사한 형태를 취한 ESM이 임시기구인 EFSF보다 효율적이고 더 뛰어난 위기대응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임시변통의 EFSF 대신 ‘유럽판 IMF’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재정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질서 있는 해체’를 선택할 때도 ESM이 EFSF보다 장점이 많다. 각종 채무재조정 협상 과정에서 ‘채권자’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각종 법적 분쟁의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전격적으로 ESM 발족을 앞당긴 데 대해 로이터통신은 “독일과 프랑스가 재정통합을 위한 유럽통합조약 변경을 추진하면서 자연스럽게 ESM을 조기에 출범시킬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 ESM

European Stability Mechanism.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 유로존의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기구. 한시적 특별기구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체할 상설조직. 당초 2013년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내년 말 설립하기로 합의됨. 5000억유로 규모에 달할 전망.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