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나라살림이 걱정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가동되기 전인데도 이미 15개 상임위원회에서 내년 정부 예산안보다 지출을 모두 11조원 넘게 늘려놓은 탓이다. 이 증액분이 그대로 확정되면 내년 예산은 당초 326조원에서 337조원으로 불어나 올해보다 무려 9% 가까이 확대된다. 더욱이 여야는 진작에 한·미 FTA 발효에 따라 농업 등 취약산업 보호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재정 적자규모가 도대체 어느 정도로 커질지 예상조차 하기 힘든 판이다.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는 것은 국민이 땀흘려 번 돈으로 내는 세금을 아껴 쓰게 하려는 뜻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국회가 예산을 깎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리기 바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지만 국회의원들은 밤마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 데에는 기를 쓰고 덤빈다. 국가 예산은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지역주민을 잘 챙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다. 선심성 복지지출이 마냥 늘어나는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정부 예산안은 복지 비중을 크게 늘렸다. 보건, 복지, 노동 분야만 해도 올해보다 6.4% 증가한 92조원으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2%나 된다. 여기에 교육, 문화·체육, 관광 부문까지 합치면 광의의 복지예산 비중은 43.4%로 확대된다. 국회 상임위가 요구하는 대로 예산을 11조원 이상 증액하려면 다른 부문의 예산을 깎거나 엄청난 규모의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예산삭감은 여야가 경쟁적으로 지출을 확대하는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증세도 논란이 많아 합의가 어려운데다 세제 개편이 수반되는 만큼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결국 정부는 국채를 더 찍어 재원을 조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정에 한번 구멍이 나면 좀처럼 수습하기 어렵다는 것을 남유럽 국가들은 보여준다. 일본도 지금처럼 극심한 재정적자에 빠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국회는 그래도 눈 감고 귀 막으며 이들의 뒤를 따라 가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