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목재 "철도 받침목 넘어 주택·유통업 진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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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잇는 家嶪…2세가 뛴다 (132) 동양목재
'40년 흔들리지 않는 뿌리' 아버지
獨 'ISO9001 인증' 획득·무차입 경영
'제2의 도약' 꿈꾸는 아들
새 물류센터 건설 등 영역 확장
'40년 흔들리지 않는 뿌리' 아버지
獨 'ISO9001 인증' 획득·무차입 경영
'제2의 도약' 꿈꾸는 아들
새 물류센터 건설 등 영역 확장
김창환 동양목재 대표(42)는 최근 자랑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지난 10월 국방부로부터 ‘국방품질경영시스템 인증서’를 받은 것. 목재업계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철도 침목과 플로어링 보드, 철강 받침대를 주로 생산하는 이 회사는 국방부에도 도하용 교판, 이동용 천막 지주목, 연습용 포탄 박스 등을 납품하고 있다. 인증서를 꼭 받지 않아도 되지만 1년 넘게 준비해 결국 인증서를 받았다. 무슨 기술을 가진 기술자가 몇 명은 있어야 하고, 생산시설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생산품은 외주를 주지 말고 반드시 직접 생산해야 하는 등 요구 사항이 까다로운 절차였다. 김 대표는 “인증을 받기까지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사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 설립자인 부친 김태규 회장(75)도 1998년 업계 처음으로 독일 라인랜드사로부터 ‘ISO9001 인증’을 받았다. 그때도 동종 업계 경영자들은 “귀찮게 그런 건 왜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인증서는 각종 관급공사나 민간시장에서 입찰할 때 큰 효과를 발휘했다. 김 대표는 “미래를 보고 뭔가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항상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자가 함께 운영하는 동양목재는 인천에서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인천지역 목재·가구업계가 원·달러 환율 상승과 내수 건설시장 침체 등으로 크게 휘청거리고 있지만 이 회사는 큰 바위처럼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와 △보수적 재무경영 △따뜻한 노사관리 △적절한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경영방식 등이 ‘튼튼한 회사’의 버팀목이다.
김 회장이 처음 목재일을 시작한 것은 1972년. 지금부터 40년 전이다.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친척이 하던 같은 이름의 회사에 취직했다. 거기서 3년을 일하다 독립했다. 처음 생산한 것은 나무로 만든 포장박스. 그후 맥주상자를 만들고 1995년부터 철도 목침목으로 주력 상품을 바꾸며 철도청과 조달청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꾸준히 성장을 추구했지만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내가 아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남의 돈을 꿔서 사업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말 은행에서 어음을 할인받으면서 보증을 제공했다가 어음 발행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회사가 쓰러질 뻔했다. 그는 “그후 신용장 때문에 단기 차입하는 것을 빼고는 은행대출을 한푼도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차입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 평균 부채 비율은 20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얼마나 회사를 잘 꾸려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사람 관계다. 동양목재엔 60여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이다. 김석암 공장장은 40년 가까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김 대표는 “내가 코흘리개였을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많다”며 “이들은 시스템을 잘 알고 현장에 익숙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세 번째 비결은 끊임 없이 적절한 변화를 추구하는 경영방식이다. 김 회장은 나무박스에서 침목으로 주력 품목을 바꿨고, 2008년 회사경영을 맡게 된 김 대표는 침목에서 학교 바닥재와 철강 받침목으로 품목을 확대했다. 단국대 회계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그동안 기업이나 정부와 거래를 해 왔는데 앞으로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품목은 목재의 장점을 살린 목조주택 쪽을 고려하고 있다. 또 유통업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인천 아라뱃길 인근에 물류센터 부지를 매입하는 한편 인천 가좌동에 있는 제1공장을 창고 및 물류부지로 리노베이션 중이다.
김 대표는 “조직엔 적절한 긴장과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며 “부친이 단단한 경영으로 일궈놓은 회사를 알차게 확장시켜 나가는 게 내 몫”이라고 강조했다.
인천=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회사 설립자인 부친 김태규 회장(75)도 1998년 업계 처음으로 독일 라인랜드사로부터 ‘ISO9001 인증’을 받았다. 그때도 동종 업계 경영자들은 “귀찮게 그런 건 왜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인증서는 각종 관급공사나 민간시장에서 입찰할 때 큰 효과를 발휘했다. 김 대표는 “미래를 보고 뭔가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항상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자가 함께 운영하는 동양목재는 인천에서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인천지역 목재·가구업계가 원·달러 환율 상승과 내수 건설시장 침체 등으로 크게 휘청거리고 있지만 이 회사는 큰 바위처럼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와 △보수적 재무경영 △따뜻한 노사관리 △적절한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경영방식 등이 ‘튼튼한 회사’의 버팀목이다.
김 회장이 처음 목재일을 시작한 것은 1972년. 지금부터 40년 전이다.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친척이 하던 같은 이름의 회사에 취직했다. 거기서 3년을 일하다 독립했다. 처음 생산한 것은 나무로 만든 포장박스. 그후 맥주상자를 만들고 1995년부터 철도 목침목으로 주력 상품을 바꾸며 철도청과 조달청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꾸준히 성장을 추구했지만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내가 아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남의 돈을 꿔서 사업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말 은행에서 어음을 할인받으면서 보증을 제공했다가 어음 발행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회사가 쓰러질 뻔했다. 그는 “그후 신용장 때문에 단기 차입하는 것을 빼고는 은행대출을 한푼도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차입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 평균 부채 비율은 20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얼마나 회사를 잘 꾸려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사람 관계다. 동양목재엔 60여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이다. 김석암 공장장은 40년 가까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김 대표는 “내가 코흘리개였을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많다”며 “이들은 시스템을 잘 알고 현장에 익숙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세 번째 비결은 끊임 없이 적절한 변화를 추구하는 경영방식이다. 김 회장은 나무박스에서 침목으로 주력 품목을 바꿨고, 2008년 회사경영을 맡게 된 김 대표는 침목에서 학교 바닥재와 철강 받침목으로 품목을 확대했다. 단국대 회계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그동안 기업이나 정부와 거래를 해 왔는데 앞으로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품목은 목재의 장점을 살린 목조주택 쪽을 고려하고 있다. 또 유통업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인천 아라뱃길 인근에 물류센터 부지를 매입하는 한편 인천 가좌동에 있는 제1공장을 창고 및 물류부지로 리노베이션 중이다.
김 대표는 “조직엔 적절한 긴장과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며 “부친이 단단한 경영으로 일궈놓은 회사를 알차게 확장시켜 나가는 게 내 몫”이라고 강조했다.
인천=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