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社, 대형 가맹점에 '뒷돈' 사실로 드러났다
카드사와 가맹점 사이 중간결제 업무를 대행하고 카드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밴(VAN)사들이 대형 가맹점에는 수수료의 절반 이상을 리베이트로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업계는 이 같은 리베이트 관행만 사라져도 가맹점 수수료를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밴사가 최근 일부 주유소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이 회사는 가맹점 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카드승인 건수가 월 1만건을 넘을 경우 △현금 500만원과 결제 건당 60원 또는 △결제 건당 100원을 주유소에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밴사가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건당 150원 안팎이란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을 가맹점에 리베이트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밴사는 또 무선단말기(48만원)나 랜 단말기(35만원)를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도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큰 식당은 건당 40~50원 정도, 주유소 등 결제건수가 많은 우량 가맹점은 건당 100원 안팎을 뒷돈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되도록 많은 신용카드 가맹점을 확보하기 위해 계약 체결을 조건으로 가맹점에 뒷돈을 주는 것이 관례가 됐다”고 말했다.

우량 가맹점에는 대형 TV나 무료 인터넷 설치까지 지원하고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일부에선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보다 가맹점에 지원하는 리베이트가 더 많은 ‘역밴피’마저 나타나고 있다.

밴사가 가맹점에 제공하는 뒷돈 관행이 사라지면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밴사가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낮추게 되면서 카드사도 가맹점 수수료를 낮출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밴 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 비용이 너무 커 밴 수수료를 낮출 여지가 없다”며 “리베이트가 사라진다면 밴 수수료를 인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 가맹점들도 “수수료율을 인하한다면 뒷돈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누가 먼저 나서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카드사와 가맹점, 밴 업계의 관행을 알면서도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리베이트가 카드 수수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밴 업계를 관리·감독할 규정이 없어 업계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