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가카 대통령과 쫄면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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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
미국 대학 로스쿨 수업의 한 장면이다. 교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보자기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이를 본 학생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벌거벗은 닭의 모조품이었다. 이날 수업 주제는 방안에서의 수간(獸姦). 어떤 남자가 닭과 정을 나누는 은밀한 현장을 들켰는데, 무슨 죄에 해당하는가 하는 질문이 학생들에게 던져졌다. 물론 결론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였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나쁜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은배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모 언론에 들킨 것을 시발로 사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다. 페이스북은 친구 단속만 잘한다면 집안에서 하는 수간처럼 사적인 영역에 가깝다.
판사들까지 무리 지어 나서
판사도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친구끼리 고담준론만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왜 남의 이불 속까지 뒤지려고 하느냐”며 판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김하늘 부장판사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사견을 제시하는 데 그쳤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하지만 이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최 판사는 청취자가 수만명을 헤아리는 라디오 방송에까지 출연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사법주권 침해”라며 자신의 주장을 공론화시켰고, 김 판사는 170명이 넘는 동료 판사들을 모아 대법원장에게 한·미 FTA 재협상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압박할 태세다. 현 대법원 상층부의 기류를 감안하면 이들의 튀는 행동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쳐 유야무야될 공산이 크지만, 한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판사라고 검은 법복 안에만 갇혀 살란 법은 없다. 문제는 최 판사를 비롯한 이들 진보성향 판사가 견해를 표출한 시기와 방법이다. 한·미 FTA 협정문은 국내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이 협정 특정조항의 위헌 여부가 문제가 된다면 판사는 얼마든지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수 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해당 문구는 효력을 상실함은 물론이다. 그러잖아도 ‘~카더라’ 식의 FTA괴담에 기대어 주말이면 전문시위꾼들이 주동이 돼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떼를 지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거나 라디오방송에 나와 불에 기름을 끼얹는 방식은 분명 판사답지 않다.
'판결문으로 말한다' 어디갔나
‘뚝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무뚝뚝한 사람’을 뜻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판결문 외에는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입이 무거웠던 판사에게 이런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요즘은 판결의 배경을 풀어 설명해주는 친절한 판사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판사들의 입은 묵직하다. 판사생활 10년이면 학창시절 친구들을 모두 잃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판사들은 사적인 모임 참석도 자제하는 편이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토씨가 틀리지 않도록 애쓴다는 판사도 만나본 적이 있다.
판사의 무색무취가 미덕이던 시대는 종말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을 ‘가카’로 지칭하거나 “쫄면 안돼”라는 반(反)정부 시위대의 풍자를 여과없이 인터넷상에 흘려보내는 판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수간장면을 보게 해서야 판사 체면이 서겠나. 드러내서 안 될 수치는 법복으로라도 감추는 게 낫지 않을까.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
최은배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모 언론에 들킨 것을 시발로 사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다. 페이스북은 친구 단속만 잘한다면 집안에서 하는 수간처럼 사적인 영역에 가깝다.
판사들까지 무리 지어 나서
판사도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친구끼리 고담준론만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왜 남의 이불 속까지 뒤지려고 하느냐”며 판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김하늘 부장판사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사견을 제시하는 데 그쳤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하지만 이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최 판사는 청취자가 수만명을 헤아리는 라디오 방송에까지 출연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사법주권 침해”라며 자신의 주장을 공론화시켰고, 김 판사는 170명이 넘는 동료 판사들을 모아 대법원장에게 한·미 FTA 재협상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압박할 태세다. 현 대법원 상층부의 기류를 감안하면 이들의 튀는 행동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쳐 유야무야될 공산이 크지만, 한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판사라고 검은 법복 안에만 갇혀 살란 법은 없다. 문제는 최 판사를 비롯한 이들 진보성향 판사가 견해를 표출한 시기와 방법이다. 한·미 FTA 협정문은 국내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이 협정 특정조항의 위헌 여부가 문제가 된다면 판사는 얼마든지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수 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해당 문구는 효력을 상실함은 물론이다. 그러잖아도 ‘~카더라’ 식의 FTA괴담에 기대어 주말이면 전문시위꾼들이 주동이 돼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떼를 지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거나 라디오방송에 나와 불에 기름을 끼얹는 방식은 분명 판사답지 않다.
'판결문으로 말한다' 어디갔나
‘뚝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무뚝뚝한 사람’을 뜻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판결문 외에는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입이 무거웠던 판사에게 이런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요즘은 판결의 배경을 풀어 설명해주는 친절한 판사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판사들의 입은 묵직하다. 판사생활 10년이면 학창시절 친구들을 모두 잃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판사들은 사적인 모임 참석도 자제하는 편이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토씨가 틀리지 않도록 애쓴다는 판사도 만나본 적이 있다.
판사의 무색무취가 미덕이던 시대는 종말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을 ‘가카’로 지칭하거나 “쫄면 안돼”라는 반(反)정부 시위대의 풍자를 여과없이 인터넷상에 흘려보내는 판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수간장면을 보게 해서야 판사 체면이 서겠나. 드러내서 안 될 수치는 법복으로라도 감추는 게 낫지 않을까.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