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가 박 타는 심정으로…로또에 목맨 사람들
“얼씨구 좋구나. 돈 봐라 돈 봐라. 잘 났어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돈돈돈 돈 봐라.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로 둥굴둥굴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아 돈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구 절씨구나. 너 이 자식들아 춤을 춰라. 아따 이놈아 춤을 추어라. 이런 경사가 어디가 있으리.”

판소리 ‘흥부가’의 한 대목이다. 흥부가 박을 타고난 뒤 그 안에서 쏟아 넘치는 금은보화를 보면서 환희에 차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흥부전은 시대상 반영한 ‘현실적인 소설’

우리나라 사람치고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았던 흥부는 복을 받고, 부자임에도 동생을 돕지 않던 놀부는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단순한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민담은 조선 중기 이후의 사회상을 담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장기간 전란을 겪은 이후 장자 중심 상속제도가 확립됐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남녀 모두가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전란 뒤로는 장자가 대부분의 재산을 차지하게 됐다. 흥부의 아내가 울면서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 장손으로 태어나서 선영 제사 모신다고 호위호식 잘 산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설을 읽어 보면 흥부전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장자 상속 제도로 빈부격차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형제간 갈등은 모두 그 시대에 흔하게 일어났던 일들이다. 단 한 부분, 결말을 빼놓고 말이다. 이 이야기는 갑자기 제비가 물어온 박씨에서 산더미같은 금은보화가 나온다는 ‘판타지’의 영역으로 점프한다. 이 같은 허무맹랑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독한 궁핍에서 탈출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의 방증일 것이다.

◆박타는 심정으로 로또 사는 사람들

실생활에서 흥부의 ‘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 복권이다. 박과 비슷한 점은 한 번에 인생 역전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실제로 당첨자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복권의 역사는 짧지 않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에서도 복권과 비슷한 형태의 게임이 시행됐던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기원전 중국에서도 만리장성을 쌓을 국방비를 모금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가 전쟁 후 복구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복권을 도입했고 네로 황제는 직접 추첨에 나서기도 했다.

국내에서 현대적 복권이 처음으로 도입됐던 때는 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이다. 일본이 전쟁자금 모집을 위해 ‘숭찰’이란 복권을 냈던 것이 시초다. 광복 이후에는 런던올림픽(1948년)에 참가할 경비를 모금한다며 복권을 발행했고 그 뒤로도 이재민 구호자금, 사회복지자금, 아시안게임·올림픽 등 행사 기금 등을 모으려고 다양한 복권을 팔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권 당첨자를 뽑는 방법도 달라졌다. 여러 번호들을 조합해 당첨자를 뽑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팔려나간 복권을 관리하는 것은 모두 컴퓨터가 담당한다. 가령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복권 ‘나눔로또 6/45’의 경우 판매된 모든 복권의 정보가 중앙 서버에 수집된다. 숫자 선정은 기계에서 공을 꺼내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당첨자 발표가 끝난 즉시 당첨자 숫자, 당첨자가 나온 판매점의 위치 등을 알 수 있다.

복권 사업을 운영하는 정부는 과거부터 복권수익금을 ‘서민복지 지원’ 용도로 사용한다고 강조하지만 지금까지 사용됐던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사실상 ‘준조세’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그것도 복권이 아니고서는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절실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걷는 ‘역진세(逆進稅)’라는 것이다. ‘복권의 역사’를 쓴 데이비드 니버트 미국 위튼버그대 사회학과 교수는 “복권의 역사는 가난한 이들의 꿈에 세금을 매긴 수탈의 역사”라며 “큰 돈을 번다는 공허한 꿈을 심어줘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의 불행과 무의미한 삶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려놓기 때문에 사회통제 수단으로도 이용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올해 11월까지 팔려나간 복권의 총 매출이 2조7948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정한 올해 복권매출 총액인 2조8046억원까지는 98억원만이 남았다. 사감위는 복권위에 연말까지 로또 판매량을 대폭 줄이거나 중단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흥부가 박을 타는 심정으로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시대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