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디자인? 기술+예술 '하이브리드형 인재'가 지배할 것"
“수저입니다.”

세계 최고의 디자인 전문 대학으로 손꼽히는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을 이끄는 존 마에다 총장(45·사진)을 만나자마자 “최고의 산업 디자인을 꼽아 달라”고 물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부엌에서 매일 만날 수 있는 수저와 나이프, 포크야말로 최고의 산업 디자인”이라고 답했다.

애플 아이폰처럼 첨단 제품을 거론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마에다 총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미디어 아트 예술가이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혁신적인 IT 기술을 연구하는 ‘미디어랩’에서 12년간 교수로 지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그의 설명을 듣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무런 설명서도 없지만 이용 방법을 직관적으로 알게 됩니다. 단순한 형태지만 활용법도 다양하고요.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쓸 수도 있습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기자는 마에다 총장을 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대학 운영 기금 마련을 위해 홍콩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한국은 개성이 강하면서도 뛰어난 문화가 있어 방문할 때마다 즐겁다”고 했다.

▶최근 산업 디자인의 흐름은.

“2000년대 들어 디지털 기술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습니다. 좀더 작고, 좀더 빠르고, 좀더 얇은 기기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죠.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것, 감성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습니다. IT 산업에서도 예술과 디자인적인 시각이 중요해지고 인문학적인 요소들과 접합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터치스크린이나 음성 인식 등 인간적인 컴퓨터는 기술 발전의 산물 아닙니까.

“최근 강조되는 ‘사용자 경험(UX)’은 전통적인 컴퓨터 과학에서 이질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컴퓨터 과학에서는 지금까지 숫자만이 중요했지요. IT 기기들이 점점 가구처럼 ‘어떻게 쓰이는가’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디자인’과 ‘최고의 컴퓨터’가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모바일 기기가 마치 명함처럼 이용자의 정체성을 표현하게 됐습니다.”

▶이런 흐름은 결국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들이 이끌어낸 것인가요.

“모바일화는 한마디로 주머니 속에 인터넷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술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제일 먼저 인지한 사람은 잡스지요. 다른 기업들이 기술이 1순위고 디자인은 2순위는커녕 3, 4순위로 고려할 때 잡스는 과감하게 디자인 위주의 사고를 선도했습니다. 예술과 기술의 접합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

▶예술과 기술은 서로 다른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둘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술과 기술 모두 최고의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과학자는 예술가로서의 소양을 갖고 있고, 최고의 예술가도 과학자의 소양을 가지고 있지요. 기업에도 두 세계 사이의 가교를 놓는 인물들이 많아야 합니다. 이 같은 하이브리드형 인간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이 될 것입니다.”

▶기업들의 경영시스템도 많이 바꿔야하겠군요.

“예술적 사고는 계속해서 의심을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 곳이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가 맞나’하는 생각 말이죠. 지금까지 기업을 지배했던 군대식 사고는 ‘저 산을 올라가야 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이제 기업의 경로도 직선에서 지그재그로 바뀌어야지요.”

▶2004년부터 자문을 해주고 있는 삼성전자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2008년에 RISD로 옮기면서 조직과 제품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적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삼성전자도 이런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갤럭시S2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삼성전자가 이 제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기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기기를 어떻게 즐기고 감정적인 연계를 맺는가 등을 스토리로 구성하더군요. 그러고 나서 어떤 기술을 집어넣을지를 결정했습니다. 놀랄 만한 변화아닙니까.”

◆ 존 마에다는 디자인ㆍ미디어 아트 거물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미디어 아트 전문가다. 일본계 이민 2세로 미국 시애틀에서 자랐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다가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꿔 일본 쓰쿠바대에서 디자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 에스콰이어지로부터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전 미디어랩 소장은 “거의 모든 것을 다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며 “평범한 것을 진주로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고 극찬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