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채용 늘지만…'유리천장' 도 없애야
대졸자들의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때 가장 가슴이 아픈 사람은 바로 고졸 실업자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고졸 실업률은 3.3%로 대졸자(2.9%)보다 높다. 또 비정규직의 70%가량이 고졸 이하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데도 차별을 받는다. 몇 안 되는 고졸 창업신화만 바라보기에는 현실은 각박하기만 하다.

◆늘어나는 고졸 채용

그런 고졸자들에게도 최근 기회의 문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공공기관을 필두로 금융회사 대기업 등에서 고졸 채용을 대폭 늘리고 있어서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DN 등 지식경제부 산하 60개 공공기관은 연말까지 550여명의 고졸 출신을 채용키로 했다. 이들 기관은 내년부터 신규 채용의 20% 이상을 고졸자로 채워 2014년까지 총 36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금융회사도 고졸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산업은행이 50명을 정규직 신입행원으로 채용했으며 외환 하나 기업 신한은행 등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등 일반 기업들 역시 고졸자를 뽑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그동안 은행 텔러(창구직원)처럼 고졸자들이 적합한 자리까지 대졸자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었다”며 “고졸 채용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채용 이후가 더 중요

채용만 늘린다고 고졸 실업자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는 없다. 우선 비정규직 고졸 채용이 많다는 게 문제다. 실물경제 분야의 공기업이나 일반 기업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은행의 경우 대부분 비정규직 텔러로 고졸자를 채용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상반기 채용한 58명의 고졸자가 모두 계약직이다. 물론 근무성적 등에 따라 향후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는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 한 은행 인사 담당자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은행으로 몰리고 있지만 상당수는 나중에 피눈물을 흘릴 수 있다”며 “비정규직으로 들어온 그들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즉 정부 시책에 맞추기 위한 보여주기식 채용이 어린 학생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처음에는 취직이 중요하지만 그 다음은 진로와 경력 관리가 보장돼야 한다”며 “경영자들이 의지를 갖고 고졸 임원도 나오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시스템과 인식 바꿔야

대졸자 중심의 이른바 ‘좋은 일자리’ 조직에서 고졸자들을 그들과 똑같은 구성원으로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겉으로는 똑같은 대우를 해준다는 곳에서도 엄연히 보이지 않는 차별인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 LG 등의 고졸 출신 임원들은 이번 취재 과정에서 한결같이 인터뷰를 거절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드러내놓고 알려질 경우 의아해하는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황수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고졸 채용 확대는 정년 연장에 따른 세대 간 갈등처럼 일정 부분 마찰이 불가피하다”며 “노동 유연성을 제고하면서 능력 위주의 인사정책을 정착시키는 제도적 문화적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