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등판 초읽기…비대위원장 맡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9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의원총회를 통해 재신임을 받은 지 이틀, 당 쇄신안을 내놓은 지 하루 만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지도부 공백사태를 맞았다. 조기 등판 압력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조만간 전면에 나설 예정이다.

홍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무상급식 주민투표 등으로 돌발적인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후에 디도스 사건 등 당을 혼돈으로 몰고가는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며 “이 모든 것은 제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

이어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혁신하고 내부 정리한 뒤 사퇴하려는 저의 뜻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으로 매도하는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다”고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7·4 전당대회로 당권을 잡은 지 5개월 만에 홍준표 체제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호(號)는 비상대책위원회 등 비상지도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는 당을 만들기 위해 박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두언 원희룡 김성식 의원 등 쇄신그룹은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쪽이다. 박 전 대표는 비대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관련, 황우여 원내대표는 “(당 후속체제를) 가능한 한 빨리 박 전 대표에게 넘기려고 한다”며 “지금 시간이 없다. 그래야 당도 빨리 자리를 잡는다”고 말했다.

임시 지도부에서 대선주자가 대표를 맡지 못하도록 돼있는 당헌·당규를 개정해 박 전 대표에게 대표자리를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당헌·당규를 만든 박 전 대표가 자신 때문에 당헌·당규를 또 바꾸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전여옥 나성린 의원 등 친이계로 구성된 재창당파 의원들은 당을 쇄신해 끌고 갈 게 아니라 아예 해체 후 재창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도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박 쪽은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외부일정도 잡지 않은 채 현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비대위원장이나 선대위원장 등 ‘자리’의 범주를 넘어서는 큰 차원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천막당사’ 시절 당을 이끌던 때보다 요즘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기득권’ 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다른 친박 의원은 “비대위 구성, 총선 선대위 구성, 조기 전당대회 실시 중 가장 현실적 방안은 비대위 구성 아니겠느냐”며 비대위원장 쪽에 무게를 뒀다. 박 전 대표는 다음주 중 본인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전면에 나서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지만 자신의 등판에 대한 당내 이견이 해소되길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후/김정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