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누군가 당신을 엿듣고 있다
다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뉴스오브더월드(NoW), ‘캐리어IQ’, 마약판매상 앤트완 존스,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1984년’. 정답은 도청이다.

NoW는 168년 전통의 영국 타블로이드판 일요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유명인사, 범죄 피해자, 아프가니스탄 파견 장병 가족 등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를 해킹한 사실이 드러나 비난여론이 확산되자 전격 폐간했다.

캐리어IQ는 같은 이름의 미국 회사가 만든 스파이웨어(사용자 모르게 정보를 빼가는 프로그램)다. 미국 이동통신회사들이 가입자 개인정보와 효과적 데이터 관리 차원에서 도용한 솔루션이 과도한 정보 수집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잊혀질 수 없는 뉴스들

마약 판매상 앤트완 존스 사건은 미국 경찰이 2008년 그의 차량에 GPS를 탑재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GPS로 수집한 정보를 증거로 존스를 기소하는 데 성공했고, 존스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이 판결이 뒤집어졌다. 최근 시작된 대법원 재판에서도 영장없이 GPS 추적을 통해 존스가 마약 거래상이란 걸 입증한 부분이 수정헌법 4조(이유없는 압수 수색으로부터 개인의 신체, 재산 및 서류 등이 보호받을 권리)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전 비서인 공모씨가 저질렀다는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은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중차대한 범죄다.

언론, 기업, 공권력, 국회 등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가공의 초대국(超大國) 오세아니아에서 자행되는 전체주의 지배를 그리고 있다. 지배를 위해 상시적 전쟁상태 유지, 개인생활의 감시, 사상 통제를 목적으로 한 언어의 간략화 등이 자행된다. 특히 신격화한 지도자 빅 브러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시민들을 끊임 없이 감시한다. 요즘 벌어지는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전율이 느껴진다.

도청, 일벌백계 해야

‘도청’이라는 ‘좀비’가 정보기술(IT) 발달에 올라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화, 휴대폰, 인터넷, GPS, CCTV 등 인류에 편리함을 선사해준 기기들을 통해 자행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IT지능을 먹고 자라는 독버섯이다. 해킹은 도청을 뛰어넘는 파괴력을 갖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무심한 것 같다. 올해 SK커뮤니케이션즈가 해킹당하면서 싸이월드 회원 3500만명의 정보가 유출되는 등 크고 작은 공격으로 개인정보가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 정보가 어떻게 쓰일지는 모를 일이다. ‘사이버 흥신소’로 불리는 사이버테러 청부 업체들이 성업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IT 강국인 한국이 수많은 정보가 생산·유통되는 ‘빅 데이터’ 시대를 선도하려면 도청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선플 운동처럼 도청이 위험하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위법행위자에 대해선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능한 해커를 양성화, 국가와 기업의 보안 파수꾼으로 키울 필요성도 더 커졌다. 정부와 기업에 ‘정보 보안관’을 두는 일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영혼이 난도질 당하면 ‘열린 사회’는 ‘닫힌 사회’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남궁덕 중기과학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