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자본시장의 곡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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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투자자 연결하는 감사인, 소신 다할 때 기업투명성 유지돼
권오형 < 한국공인회계사회장 kohcpa@kicpa.or.kr >
권오형 < 한국공인회계사회장 kohcpa@kicpa.or.kr >
그중 자본시장이란 증권시장과 장기 대출시장 등 장기자금의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는 시장을 말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적인 토대를 이룬다. 이런 자본시장에 진입하려는 회사는 우선 투명하고 건전해야 한다. 기업은 공인회계사를 통해 회계감사를 받으며 이후에도 매년 회계연도 말 감사보고서를 통해 투명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때 공인회계사는 감사의견으로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과 의견 거절 네 가지를 낼 수 있으며, 부적정 의견과 의견 거절을 받은 회사는 부실회사로 간주돼 자본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한다. 공인회계사의 ‘파수꾼’ 역할은 그만큼 엄중하며, 그 때문에 공인회계사의 책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조계에 있는 후배로부터 “우리나라의 많은 전문 자격사들 중에 자신의 고객 약점을 최대한 들춰내야 돈을 버는 유일한 자격사가 공인회계사다. 그러니 인기가 없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필수불가결한 파수꾼이 현실에서는 비인기 직종이다. 예를 들어 변호사는 의뢰인이 흉악한 살인범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변호해 혐의를 벗게 하거나 형량을 줄여 주면 유능한 변호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반대로 공인회계사가 감사 대상 회사의 문제점을 두둔하면 정보이용자들로부터 소송까지 당하게 된다. 더욱이 오히려 회사의 문제점을 최대한 밝혀내면 결국엔 거래처를 잃게 마련이다. 즉 감사인은 의뢰인인 회사와 정보이용자인 자본시장에서의 요구가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만일 정보를 이용하는 금융기관, 거래소, 투자자, 정부기관 등이 감사인을 선임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제도로 바뀐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공인회계사가 이들을 대신해 보다 객관적으로 회사의 문제점을 정확히 밝혀내고 자본시장의 공정한 파수꾼이라는 명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많은 공인회계사는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야기되는 고객 상실의 불안과, 문제점을 간과함으로써 야기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곡예에서 실패하는 순간 사회로부터의 냉소와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파수꾼보다는 곡예사이길 원하는 비상식적인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에서 오늘도 밤을 새워가며 소신을 다하는 많은 동료 선후배 공인회계사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들 때문에 그나마 한국의 기업 회계투명성이 유지되고 있다.
권오형 < 한국공인회계사회장 kohcpa@kicp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