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이 쌓이고 있다. 줄잡아 작년보다 3배가량 많아졌다. 하지만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주요 인수 후보인 대기업들은 해외 M&A에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 국내 중소기업은 쳐다보지 않는다. 유동성이 넘치는 사모펀드들도 고개를 젓기는 마찬가지다.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 보니 그렇다. 산업은행 등에는 기업을 팔아주든지, 자금을 추가 지원해달라는 기업들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쌓이는 매물들

삼성중공업은 신텍을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상장 때 이익을 부풀려 요건을 맞추려 했던 점이 드러나면서 계약을 파기했다.

증시에서조차 퇴출위기에 몰린 신텍은 STX중공업과 비밀유지협약을 맺고 매각을 타진 중이다. 하지만 STX그룹 쪽에선 인수 의사가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STX그룹 관계자는 “분식회계를 이유로 상장폐지가 될 경우 주주들의 항의를 받을 게 뻔한데 누가 뒷감당을 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단조 분야에서 국내 대표 주자인 평산도 매각을 포함한 구조조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10월 산업은행과 기업구조개선을 위한 자문 계약을 맺고, 유상증자 및 매각을 검토했으나 사려는 기업이 없어 계획을 중단하기로 했다.

10월 말 공개 매각을 진행했던 한국건설관리공사는 예정 가격을 10% 할인해 내놨음에도 원매자가 한 곳도 나서지 않아 매각이 무산됐다. 이 회사는 한국도로공사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각각 42.5%, 38.6%를 보유한 공기업이다.

올해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게 된 팬택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상증자 및 매각 계획을 발표했으나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두산그룹이 선제적인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물로 내놓은 SRS코리아(버거킹 운영)는 최근 SC PE(사모펀드)와 매각 협상을 벌였으나 가격 차를 좁히지 못해 무산됐다. 우리들제약도 닥터홀딩스 등과 계약을 맺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파파이스도 오랫동안 M&A시장에 떠돌고 있는 매물이다.

◆굴뚝업체에서 휴대폰 부품업체까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글로벌 경기가 부진에 빠지면서 중소업체 매물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의 3배 수준으로 추정한다.

M&A 전문 중개업체인 ACPC의 남강욱 부대표는 “16년간 M&A업계에 종사하면서 요즘처럼 중소기업들이 매물로 많이 나온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M&A 중개업체를 찾아와 팔아달라는 기업들은 주로 ‘굴뚝 산업군’에 속한 중소업체들이다. 비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2, 3차 벤더를 비롯해 연 매출 100억~300억원가량의 기계설비 플랜트 단조업체들이 대부분이다. 남 부대표는 “1년 전만 해도 한 달에 2~3건 정도 들어오던 매각 문의가 요즘엔 이틀에 한 건꼴로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자동차, 휴대폰 부품업체도 M&A시장에 나오고 있다. 주로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2, 3차 벤더들이다.

◆대기업은 외형확대 자제

문제는 매물이 좀처럼 팔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품업체들의 주요 인수 후보는 대기업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해외 기업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해외에 우량매물이 나오고 있는 탓도 있지만 국내에 반(反)대기업 정서가 형성되고 있어서다.

CJ제일제당만 해도 간장업체인 오복식품을 인수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간장이 동반성장위원회의 1차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포함돼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M&A 자제’ 품목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M&A업계 관계자는 “M&A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는 외형을 키우려는 동종 업계의 대기업들이 중소업체들을 인수하곤 했다”면서 “최근엔 반대기업 정서가 퍼지면서 대기업들이 국내에선 외형 확장을 자제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