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의 폐엔 시꺼먼 먼지와 쇳가루가…"
“수술을 위해 폐를 열었더니 모래먼지인지, 쇳가루인지 모를 꺼먼 물질이 나왔다는데….”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운명하자 삼삼오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제철보국(製鐵報國)’ 믿음 하나로 1960년대 말 포항의 허허벌판에 포항제철을 세우고 회사를 글로벌 제철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맨발로 현장을 누비며 숱하게 마신 모래먼지와 쇳가루, 석면가루가 결국 고인의 폐를 망가뜨렸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2011년 12월13일 오후 5시20분. 철인(鐵人) 박태준도 세월의 무게와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주치의인 장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고인 얼굴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뒤 “사망 원인은 갑작스런 급성 폐손상으로 인한 호흡 곤란”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난달 수술 때 보니 폐 부위에서 석면과 규폐가 발견됐다”며 “이런 물질들 때문에 발생한 염증으로 폐의 석회화된 섬유화 병변이 일어났고 흉막유착이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주변에서는 84세의 고령에도 강인한 정신력과 젊은 시절 강철 같은 체력을 자랑했다는 점에서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힘겨운 투병생활을 끝내 견디지 못했다.

노년의 철인을 끝없이 괴롭힌 병마는 폐 질환이었다. 고인은 2001년 폐 아래쪽에 물혹(흉막섬유종)이 발견돼 미국 코넬대병원에서 4시간여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폐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줄곧 후유증에 시달렸다. 수술을 통해 제거한 혹은 폐를 직접 압박할 만큼 덩어리가 커진 상태였다. 흉막섬유종은 폐를 둘러싸고 있는 막에 딱딱한 양성종양이 발생한 것으로 호흡 곤란을 야기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당시 수술 현장을 지켰던 포스코 관계자는 “심장과 허파 사이에 생긴 물혹의 무게가 3.1㎏에 달할 만큼 엄청났다”며 “일본에서 검진을 받을 때만 해도 의사들은 성공률이 30%에도 못 미친다고 수술을 만류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달 9일 가벼운 감기 증세가 호흡 곤란으로까지 이어지자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이틀 뒤 오른쪽 폐 전부를 들어내는 흉막-전폐 절제 수술을 받았다. 회복 조짐을 보인 것도 잠시, 이달 5일 왼쪽 폐에도 급성 폐 손상이 생겨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고인은 앞서 1993년 직장 종양이 발견돼 일본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김수언/이준혁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