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모국어 감각 잃어버릴까봐 소설 썼죠"
“다들 상처를 갖고 있으면서 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상처와 상처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올해 초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들고 10년 만에 고국땅을 밟았던 시인 허수경 씨(47·사진). 이번엔 장편소설 《박하》(문학동네)와 함께 독자를 다시 찾아왔다. 1987년 등단한 그는 시집 두 권을 낸 뒤 1992년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훌쩍 떠났다. 2006년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해 그곳에서 살고 있다.

“6년 전 터키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였던 하투샤라는 고대 도시에 발굴작업을 갔다가 바위 계곡에 핀 야생 박하 군락지를 보고 작품을 구상 했어요.”

《박하》는 사고로 아내와 아이 둘을 잃은 이연이 친구가 건넨 오래된 노트의 기록을 따라 자아 찾기에 나서는 이야기다. 이연은 20세기 초 독일인에게 입양돼 고고학자가 된 이무의 기록을 읽으며, 강하게 동질감을 느낀다. 소설은 시공간을 거슬러 이연과 이무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는 “내 언어공동체를 떠나 살면서 말의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며 “말을 연습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했다.

“소설을 쓰긴 하지만 저는 시인이에요. 자아를 출발하게 해준 것도 시이고, 완성하게 해준 것도 시예요. 소설과 시를 어떻게 병행할지 명확한 구상은 없지만, 아마 시를 쓰는 시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

책 낭독회 등을 마치고 15일 다시 독일로 떠나는 그는 “내게 고향이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있는 공간”이라며 “내가 낳았지만 멀리 떠나버려 고아로 남게 된 책들이 보살핌을 잘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