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 부근의 혜화동로터리. 일요일 오후가 되면 이곳은 필리핀인들로 가득 찬다. 혜화동성당에서 필리핀 근로자를 위한 미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필리핀 여성 S씨. 미사를 드리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은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터로 복귀한 것은 가족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며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 근로자들은 혜화동이 정신적인 안식처다.

단지 미사만 드리는 게 아니다. 성당 앞에서 동성고 정문까지 약 200에 걸친 도로변에는 일요일마다 필리핀시장이 열린다. 길거리에서 좌판이나 리어카 등에 식료품 음료 육류 생선 과일 등을 놓고 판다. 이곳에서 필리핀 근로자들은 장을 보고 정보도 교환한다.

지난 11일 오후 3시께. “망고 맛있어요. 세 개 1만원. 사세요.” 이곳에서 과일을 파는 에로니씨는 서툰 한국말과 함께 기자에게 망고를 한 봉지 담아 내밀었다. 또 다른 좌판을 벌린 그레이스씨는 “날씨가 좋으면 수백명이 찾는다”며 “한국 사람들도 많이 와 그들과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좌판을 벌린 사람들도 대부분 근로자다. 일요일에는 행상으로 변해 투잡에 나서는 것이다. 내국인이나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색적인 필리핀시장을 구경하러 많이 찾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작은 지구촌’이 되고 있다. 이곳은 인종 갈등은커녕 낙천적인 필리핀인들과 한국인들이 만나는 문화의 다리가 되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