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 교수의 생생 경제] 무역 1조달러 시대
장면 #1: “10, 100, 1000.” 1970년대 초에 이 세 숫자를 마치 탑처럼 쌓아서 1980년대의 장밋빛 경제 청사진을 제시한 적이 있다. 1980년대가 되면 100억달러 수출에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00억달러 수출은 무려 4년이나 앞당겨 1977년에 달성했다.

장면 #2: 한 사람이 우리나라 소형차 한 대를 운전해서 저만치 앞에 갔다 놓고, 내려서 뒤로 한참을 걸어와 다시 똑같은 차를 운전해 아까 그 차를 지나쳐 세운다. 다시 내려서 뒤로 돌아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일본차 한 대 값으로 한국 차를 사면 두 대를 살 수 있다는 1980년대 후반 미국의 한 TV광고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우리나라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고도성장을 달성하며, 마침내 올해 무역규모 1조달러를 달성했다. 100억달러 수출이 아련하게 장밋빛으로 보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엄청난 양적 성장이 1조달러 무역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양적 성장만은 아니다. 수출주도 품목을 보면 수출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1961년 우리나라 5대 수출품목은 철광석 텅스텐 생사 무연탄 오징어였다. 모두 1차산품이다. 이 목록이 1970년에는 섬유, 합판, 가발, 철광석, 전자제품 등 경공업 제품으로 바뀌었고 1980년에는 섬유, 전자제품, 철강, 신발, 선박 등 중공업제품이 이름을 올렸다. 1993년에 화학공업제품과 자동차가 밀고 올라왔고, 2000년대에 들어서 반도체, 컴퓨터가 리스트의 제일 윗자리를 차지했다. 노동집약적 상품에서 자본집약적 상품을 거쳐 마침내 지식집약적 상품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저임금을 바탕으로 가격경쟁을 하던 것에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품질 경쟁 및 품목의 다양화를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차 두 대로 상대하다가 이제는 차 한 대로 맞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런 수출 및 무역의 성장은 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한마디로 경성(硬性)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이를 배경으로 한 대기업 주도로 요약할 수 있다. 특혜적 성격의 정책금융, 대통령이 주관했던 수출확대월례회의는 이런 정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역 1조달러 시대에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할 점도 있다. 먼저 시장원리를 뛰어넘는 정책적 ‘드라이브’는 많은 문제를 수반할 수 있고, 그것은 언제든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간의 성과가 경제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질적 성찰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볼 때 앞으로도 이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더구나 이제는 쫓는 입장이 아니라 쫓기는 입장에서 자기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