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꼭꼭 숨은 하이마트 '두 회장님'
하이마트의 1, 2대 주주인 유진기업의 유경선 회장과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의 경영권 분쟁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유 회장의 경영 참여 요구에 ‘박힌 돌’ 선 회장이 항거하더니, 돌연 지난 1일 둘 다 하이마트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6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지 채 반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박진감 넘치는 싸움, 예상을 뒤엎은 결론은 투자자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막이 내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들을 홀렸던 마법이 서서히 풀리고 있다. “하이마트 사태는 자본시장 질서를 흔든 나쁜 사례”라는 게 비판의 골자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최대주주 변경은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라며 “상장 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상장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각 가격이 최대 3조원대에 이르는 오랜만의 ‘대어’가 나와 흥분에 들떠 있는 투자금융(IB) 업계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마트 상장을 주관한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다시 매각 주관사를 맡겠다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경영진과 IB들이 손에 쥘 돈을 향해 웃음을 짓고 있는 사이 하이마트와 투자자들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에 불안해 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장할 때 선 회장이 내세웠던 해외 진출도 물 건너간 것 아니냐”며 “앞날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위험 부담을 떠안기는 마찬가지다. 14일 하이마트 주가가 8만1900원으로 공모가(5만9000원)보다 여전히 높지만, 매각이 지연될 경우 주가는 언제 미끄럼을 탈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보완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처럼 최대주주가 지분을 팔면 소액주주들의 주식도 사주는 공개매수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래소는 1, 2대 주주 사이에 경영권 분쟁 소지가 있는 기업들에 대해 상장 문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두 ‘회장님’들의 사과일 것이다.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며 투자자들한테 쌈짓돈을 받은 다음 불과 몇 달 만에 회사를 매물로 내놨음에도 사과는커녕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현실이 아쉽다”는 한 투자자의 목소리가 귀에 남는다.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