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명품 빛내는 장인정신
스위스 제네바의 금속조각 장인인 올리비에 부셰 씨의 집은 얼핏 봐선 명품의 산실이란 느낌이 전혀 없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올 법한 예쁜 3층 건물이었다. 거실에 들어서니 용 모양의 조각품, 오리엔탈 풍의 각종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정돈돼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최고급 시계·보석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의 시계 다이얼(시계판)에 에나멜 가루로 색을 입히고 각종 희귀 원석들을 잘라 붙이는 공방이 나타났다. 200여종이 넘는 에나멜 가루통이 놓인 선반과 현미경, 오묘한 색감을 표현해내는 원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장인들은 작은 다이얼의 구석구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붓으로 칠했고, 어떤 색들을 섞어야 원하는 색이 나올지 수천번씩 테스트한 결과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손을 움직였다. 색을 입힌 다이얼판은 오븐에서 천천히 구워 볼록한 입체감을 갖게 되는데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으면 과감하게 폐기 처분한다.

부셰 씨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수심 300m 깊이의 바다에서 나오는 오묘하고 단단한 조개껍질을 사들이고 있다”며 “원하는 색감의 극소 부위만 잘라쓰기 때문에 남은 부분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정확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반클리프 아펠 시계의 부품을 만드는 또다른 장인의 이름을 딴 공방인 장 마르크 비더레흐트의 워크숍도 자연과 벗삼은 공간 구성이 특징이었다. 이곳은 시계부품의 핵심인 무브먼트(동력장치)를 어떤 컨셉트로 만들지 정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최상의 부품으로 정확한 시간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아주 정교한 작업을 하는 곳이다.

제네바 워치메이킹 그랑프리 상을 받기도 한 이 작업실은 24시간을 주기로 다이얼이 회전하면서 낮과 밤을 알려주는 기술을 낳은 곳이다. 1년을 주기로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는 기술, 남녀가 다리 위에서 12시간마다 만나 키스하는 모습을 다이얼로 표현해낸 기법 등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부품을 생산해내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명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정교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예술성과 장인정신이었다.

민지혜 제네바/생활경제부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