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기업어음(CP)과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 판매를 중단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CP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던 비우량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질 전망이다. CP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 중 상당수는 은행에서 대출을 꺼리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중 신용등급이 BBB급 이하인 기업과 A급 이하 건설사, 그룹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계열사들이 당장 힘들어질 전망이다.

◆증권사 왜 CP 판매 꺼리나

우리투자증권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 2월까지 LIG건설 CP 130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LIG건설은 2월 말 부도처리됐다. 손실을 본 투자자 2명은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남부지법(민사 11부)은 우리투자증권에 6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우리투자증권은 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린 만큼 이 같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성 있는 CP나 회사채를 아예 취급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수수료를 챙기려다가 더 많은 손실을 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키움증권도 비슷하다. 법원은 지난달 성원건설 전환사채(CB) 발행 주관사인 키움증권에 대해서도 60%의 손실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성원건설은 2009년 9월께 키움증권을 주관사로 360억원어치의 CB를 발행한 후 2010년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키움증권도 이에 따라 CB를 포함한 회사채 영업을 축소했다.

◆CP 차환 부담 가중

증권사들의 CP 판매 중단이 확산되면 당장 건설사 등 업황 부진 기업들이 문제가 된다. 지난 13일 현재 기업들이 발행한 CP 잔액(금융투자협회 기준)은 60조2623억원에 이른다. 이 중 약 60%에 해당하는 36조원이 6개월 이내 상환되거나 차환 발행돼야 한다.

정광호 나이스신용평가 평가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회사채시장에서 외면받아 CP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온 건설사들이 단기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발행한 CP 잔액은 지난 9월 말 현재 8970억원이다. 이 중 74%(6580억원)가 올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채로 치면 A급 이상에 해당하는 A1과 A2등급 CP는 지난해 말 42조4981억원에서 지난 13일 57조1985억원으로 35% 늘었다. 반면 BBB급에 해당하는 A3등급 CP는 지난해 말 3조520억원에서 1조8800억원으로 39% 가까이 줄었다.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증권사들이 비우량 회사채 판매 규모를 축소하고 있어서다. 한 증권사 소매채권영업팀 관계자는 “판매채권에 대한 증권사의 책임과 실사 의무가 강화되면서 리스크가 높은 기업의 회사채는 중개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며 “위험이 높은 기업들의 직접자금시장 접근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개인들에게 판매하는 고수익 회사채 규모는 지난해 이후 빠르게 움츠러들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투자 수요 증가에 힘입어 3조6644억원 규모의 회사채가 개인들에게 팔렸으나 올해는 1조5626억원으로 지난해(2조5113억원)에 이어 2년 연속 30% 넘는 감소세를 나타냈다.

2009년 고수익 소매채권시장의 성장은 유동성이 악화된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유럽발 위기로 신용경색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역할은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김은정/이태호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