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투자 부족으로 사립 위주…추가부담은 학부모 몫
'수혜성 경비' 보고 의무 없어…제도 미비
전문가들 "장기적으로 공립화 방향으로"

"사립유치원들이 학기 시작 전에 4∼5개월분 교육비를 미리 받아 학부모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근 기사가 아니다.

23년 전인 1988년 1월 경향신문 사회면에 실린 것이다.

그만큼 사립유치원비를 둘러싼 학부모의 불만과 부담은 해묵은 문제다.

이 문제의 가장 단순한 해답은 초등학교처럼 유치원도 국·공립을 기본으로 하되 특별한 추가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는 사립유치원을 택하게 하는 의무교육화다.

해답은 단순하지만 이런 해답에 이르기 위한 해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간 국가 투자가 부족했던 탓에 우리나라의 유아교육은 초·중·고교 교육과는 달리 사립 위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보육이 설립취지인 어린이집까지 유아교육에 가세하면서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졌다.

유치원은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이,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무 부처여서 일관된 정책 수립도 어렵다.

◇유치원비 올라 무상보육 '무색' = 정부는 저출산 대응 차원에서 취학전 아동의 무상보육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유치원 교육이 사실상 의무교육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만5세 무상보육'을 전면 실시키로 하고 2012년 만5세 유아를 둔 가정에 월 20만원을 지원하고 이를 2016년 30만원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 정도 지원금은 자녀를 공립유치원에 보낸다면 충분하지만 사립유치원에 보내면 '무상보육 정책'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올해 전국 사립유치원의 평균 유치원비만 따져도 월 32만원이 넘는다.

정부지원금과 차액은 학부모 부담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사립유치원장이 유치원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교육감이 상한선을 정해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렇게 되면 무상보육 정책도 퇴색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석호현 회장은 "정부가 인건비와 운영비 일부를 사립유치원에 지원하지만 전기요금, 식자재료, 인건비 등의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며 "고액의 교육비를 받는 일부 사립유치원이 언론에 두드러지면서 사립유치원 전체가 매도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립유치원 왜 안 늘리나 = 공립유치원은 유치원비가 사립의 6분의 1 수준인데다 교육의 질도 높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공립 장충유치원의 정해남 원장은 "공립에 아이를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경쟁이 높은 편"이라며 "비용과 교육의 질 모두 만족스럽다며 형에 이어 동생도 공립유치원에 보내려는 학부모도 많다"고 말했다.

공립유치원은 2000년 4천173곳에서 해마다 꾸준히 늘어 10년간 7.8% 증가했다.

하지만 공립유치원의 대다수가 초등학교 교실 일부를 변형한 소규모 병설형태여서 수용 원아 수는 사립유치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대도시의 경우 공립유치원을 교육청이 세우고 싶어도 토지 매입비용과 건축비용이 턱없이 높아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사립유치원의 반발도 공립유치원 확대의 장애물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값싼 공립유치원이 어느 지역에 들어서면 기존 사립유치원의 유아를 잠식하게 돼 반발이 거세다"며 "이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각 교육청은 사립유치원이 들어서지 않은 신도시나 재개발 지역, 학부모의 요구가 높은 곳에 우선적으로 공립유치원을 세운다.

◇'사립유치원비 급등' 제동장치 없어 = 사립유치원이 유치원비를 갑자기 올려도 제도와 여건이 미비해 교육당국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유치원비를 전년보다 과도하게 올리거나 인근 유치원과 담합하는 행위에 대해 교육청이 지도·감독권이 있지만 인원이 부족해 적발하기 어렵고, 적발해도 시정하라는 권고 외에는 제재수단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유아교육법에 따라 사립유치원장은 등록금과 수업료를 교육감에게 보고해야 하지만, 정작 학부모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기타 납부금(수혜성경비)은 의무 보고사항에서 빠져 있다.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이 기타 납부금도 1년에 한 번씩 조사하긴 하지만 현금 수납이 많고 유치원이 축소 보고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실제 학부모들이 내는 돈은 조사 결과보다 많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기타 납부금을 인상할 때는 학부모와 합의해 동의서를 받아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유치원은 드물다.

사립유치원 학부모 정성미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는 자기가 당한 불이익을 부모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절대 약자"라며 "아이를 맡긴 처지라서 유치원이 통보하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 최자영씨는 "유치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주 옮기는 것도 아이들에겐 큰 스트레스여서 웬만하면 돈을 올려준다"며 "유치원은 학부모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동의서는 그야말로 탁상 정책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없나 = 국·공립유치원, 사립유치원, 어린이집이 혼재한 유아 교육시스템에 대한 해법은 간단치 않다.

그러나 학부모의 부담을 없애 무상보육으로 가야 한다는 전체적인 방향과 이를 어떻게 해서든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유아교육에 대한 투자는 초·중·고교보다 낮은 비용으로 효과가 크다는 게 증명된 사실"이라며 "사립유치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점차적으로 늘리는 게 1차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정부의 지원을 늘리는 전제는 사립유치원의 회계와 운영을 교육당국이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립유치원이 추가적인 명목을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상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연승 경성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정부의 지원을 계속 늘리기만 하는 것으론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우려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유아교육을 의무교육화하려면 유치원의 공립화라는 결단을 정부가 과감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사립유치원이 개인의 재산이어서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사립유치원 소유자와 최대한 마찰을 줄이면서 정부가 이를 매입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서울=연합뉴스)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