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차에 노른자 동동…정여사 알지?"
식곤증이 밀려올 시간인 오후 2시. 낡은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 묵직한 철제문을 열고 다방에 들어서자 허걱,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다른 커피숍 같으면 한산할 시간인데 여기엔 빈자리가 거의 없다.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물통이며 두툼한 방석, 벽마다 빼곡하게 걸린 글씨와 그림,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마담’까지…. 30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 종로2가의 그야말로 ‘옛날식’ 미도다방이다.

◆하루 손님 300~400명

“손님이요? 하루에 300~400명씩 옵니다. 요새는 유명해져서 그런가 안동·영천·고령·현풍·청도 등 각처에서 오죠. 대구에 일보러 왔다가 들러 친구나 지인들 안부도 묻고 그러거든요.”

1980년부터 이 다방을 운영해온 정인숙 씨(59)의 말이다. 미도다방의 피크타임은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주요 고객은 60대 이후 어르신들. 오전에 집을 나와 지인들과 점심을 든 후 다방에서 소일하다 귀가한다. 손님의 절반은 매일 출근하는 단골들이다. 저녁 땐 60대 이하의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데 요샌 소문을 듣고 서울·부산 등 멀리서 오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 가수 조영남 씨 등 유명인사들도 많이 다녀갔다.

◆호칭은 마담대신 ‘여사’

"쌍화차에 노른자 동동…정여사 알지?"
30여년을 한결같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는 정씨는 주 고객인 어르신들의 벗이요 애인이며 위로자다. 커피·녹차 한 잔 값은 2000원. 석유곤로에서 6시간 넘게 달여낸 약차와 쌍화차는 각각 2500원, 3000원이다. 도심에 있는 다방이지만 어르신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찻값을 ‘착하게’ 매겼다.

그런데도 차 한 잔을 시키면 웨하스와 전병, 강정 등 간식을 듬뿍 담아 그냥 준다. 쌍화차엔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워 옛맛을 더한다.

이런 정성 덕분에 손님들은 그를 마담 대신 ‘정 여사’라고 부르며 대우한다. 그 숱한 세월에 스캔들은 없었을까. 정씨의 대답은 ‘노(No)’다. “어르신들 간에 일종의 신사협정 같은 게 있어요. 정 여사는 꺾으면 안 될 꽃이라는…. 그래야 오래 같이 볼 수 있잖아요, 호호.”

애초 정씨가 다방을 하게 된 건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서였다. 다방 일이 싫고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지만 어느 때부턴가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해졌다. 정씨는 “찻값도 싸지만 그나마 남는 돈도 30~40%는 손님과 이웃들을 위해 쓰게 된다”고 했다.

대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