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우리를 거역한다면 맞서 싸워 복종시킬 것이다.”

‘남미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는 독립을 향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스페인에 대항해 남미 해방전쟁을 벌이던 1812년 3월이었다. 큰 지진이 발생한 데 대해 가톨릭 사제들이 “볼리바르가 일으킨 전쟁 탓에 신이 노했다”고 소문을 퍼뜨리자 볼리바르는 이같이 일갈했다. 그는 파죽지세로 스페인을 몰아내고 1819년 콜롬비아, 1821년 베네수엘라, 1822년 에콰도르, 1824년 페루, 1825년 볼리비아를 각각 해방시켰다.

볼리바르는 1783년 7월24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장 자크 루소의 계몽주의에 심취한 그는 루소의 자유·평등·해방 사상이 남미에서 날개를 펴길 원했다. 1810년부터 독립운동에 나섰고 1819년 콜롬비아를 해방시키며 명성을 떨쳤다. 그해 12월에는 남미 전체의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대(大)콜롬비아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볼리바르의 남미 통일 구상은 당시 실력자들의 이권 다툼 때문에 결국 실패했다. 그는 실의에 빠져 대통령직을 사임한 뒤 칩거했다. 그리고 1830년 12월17일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181년 전 오늘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 시몬 볼리바르

·1783년 7월24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출생

·1810년 반(反)스페인 남미독립전쟁 참여

·1819년 2월 독립운동세력 결집해 혁명정부 수립

·1819년 7월 콜롬비아 독립시킴

·1819년 12월 대(大)콜롬비아 공화국 대통령 당선

·1821년 베네수엘라 독립시킴

·1822년 에콰도르 독립시킴

·1824년 페루 독립시킴

·1825년 볼리비아 독립시킴

·1830년 4월 파나마회의 해체되자 대통령직 사임

·1830년 12월17일 결핵으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