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러츠는 마음 속에만…몸은 이미 빙판에 나뒹굴고…
김연아의 트리플 러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빙상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스케이팅은 뼈를 깎는 수만 번의 연습으로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인내의 스포츠였다.

한겨울 강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16일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기 위해 안양시 비산동의 안양빙상장을 찾았다. 처음 건네받은 피겨용 스케이트는 생각보다 작았다. 스피드스케이팅용이나 하키용보다 날이 굵고 짧았다. 날 앞쪽에는 톱니 무늬의 뾰족한 토가 있어 점프를 하거나 스텝을 밟을 때 얼음을 찍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문제는 스케이트 안에 발을 넣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스케이트 안은 여유공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타이트했다. 거기에다 촘촘한 끈을 단단히 조여매야 했다. 점프 등 움직임이 많은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불편함과 싸워야 했다.

오늘 피겨의 기본을 마스터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빙판 위에 섰지만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과욕이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꽉 끼는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일일 코치로 나선 김도환 안양빙상장 코치는 “많은 일반인들이 김연아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피겨를 배우러 오지만 현실은 빙판을 굴러야 한다는 걸 첫날 깨닫게 된다”며 위로했다.

첫 동작은 허리 굽혀 제자리 걷기였다. 언뜻 보면 쉬운 것 같지만 서 있기도 힘든 초보자에게 걸으면서 잠시 동안 한 발로 서 있는 자세는 힘겨웠다. 하체로 충분히 받쳐주면서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는 균형감이 필요했다. 발을 V자로 만들어 밀어주며 앞꿈치를 앞으로 모아 A자로 만드는 항아리 자세를 연습할 땐 다리가 후들거렸다.

트리플 러츠는 마음 속에만…몸은 이미 빙판에 나뒹굴고…
앞으로 밀고 나가는 활주자세는 김 코치가 한 손을 잡아줘야 가능했다. 앞으로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나가며 양손을 뻗어 중심을 잡는 것. TV 중계에서는 그렇게 쉬워보이는 동작이었는데 막상 해보려니 토와 날을 조화롭게 이용하는 게 쉽지 않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와 허리에 힘을 주다 보니 엉거주춤한 자세가 이어졌다.

김 코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지 말고 전방을 보고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이 하늘을 보도록 뻗어야 아름다운 자세가 나온다”고 가르쳐줬다.

한자리에서 온몸을 회전하는 제자리 스핀은 어지러움 그 자체였다. 선 채로 팔을 양쪽으로 뻗고 제자리에서 스텝을 밟으며 회전하다가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팔을 천천히 가슴으로 모으면서 관성을 이용해 계속 회전하는 동작이었다. 서너 번 연습했더니 현기증이 났다. 스핀도 힘든데 점프한 뒤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도는 트리플 러츠는 어떻게 해낼까.

김 코치는 “체력은 기본이고 몸을 움직이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래서 유연성과 섬세함이 요구되는 종목”이라고 설명했다. 피겨의 매력을 묻자 “세계적인 남자 선수들은 쿼드러플 악셀(공중에서 네 바퀴 반 회전)을 하기 위해 수만 번 연습하고 빙판에서 넘어진다”며 “피나는 연습을 통해 결실을 얻었을 때의 성취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연아 효과’로 최근엔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안양빙상장 외에도 과천시민회관, 고양 어울림누리,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등이 있다. 목동과 잠실에서도 배울 수 있다.

안양빙상장의 강습비는 성인 대상 주말 2회 6만원. 초급 과제는 한 달이면 배울 수 있으며 기본 동작을 마스터하는 데 1년 정도 걸린다. 입문용 스케이트는 20만원 정도이며 중고 제품을 구입하면 10만~12만원 선에서 구할 수 있다.

안양=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