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분당 중고 명품 숍의 어제와 오늘
‘전 주인’ 신분은 가격만큼 중요한 ‘프리미엄’

2000년대 초반 국내 명품 시장의 급성장 물결을 타고 동반 성장한 ‘블루 오션’이 있으니 바로 중고 명품 매매 시장이다. 3~4년 전부터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중고 명품 숍이 등장했던 것이 그 방증이다.

2011년 중고 명품 시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서울 강남 대치동 A아파트 상가. ‘입성’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강남 부유층의 대표적 랜드마크인 이 아파트 상가는 여느 아파트 상가와 다른 모습이다. 분식집도 있거니와 금은방, 고급 의류 숍 등 럭셔리 아이템을 파는 곳이 많기 때문. 특히나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중고 명품 숍이다. 취재진이 상가를 찾은 날도 A아파트 주민을 비롯해 상당수 강남 주부들과 경기도 분당에서 온 주부 손님들이 중고 명품 숍에 줄을 잇고 있었다.

◆30~40대 강남 주부들, 중고 명품 시장의 ‘큰손’

서울 지역에서 중고 명품 숍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은 대치동 A아파트 상가, 압구정 로데오 거리 일대, 신촌의 백화점 주변, 이화여대 일대와 목동 등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에만도 중고 명품 숍이 몇백 개에 달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일산 장항동과 분당이 중고 명품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지역. 부산, 대구, 울산 등에서도 중고 명품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 가운데 하나다.

10여 전부터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중고 명품 숍은 3~4년 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예전 남대문 시장 일대에서 암암리에 거래된 롤렉스 시계도 ‘수면’위로 올라와 어엿한 숍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 이러한 중고 명품 시장을 키운 큰손은 30~40대 강남 주부들이다. 이들 사이에서 ‘중고(used)’를 ‘앤티크(antique)’로 인식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기면서, ‘남이 쓰던 물건’이라는 부정적 인식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고가의 명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속파들이 늘어난 것.

못말리는 '이영애 백'…중고도 없어서 못 팔아!
3~4년 동안 증가하는 중고 명품 숍만큼 고객층도 확대되고 수도 증가해 20대는 물론 50~60대까지도 중고 명품 시장의 신(新) 소비자 군으로 등극했다. 따라서 권역별로 고객층에도 차별화가 이뤄져 대치동, 목동, 분당 소재 중고 명품 숍은 주로 30~50대 주부들이, 압구정과 이대 일대는 20대 젊은 여성들이 주 고객들이다.

최근에는 남성 고객들도 증가했는데 여성 고객이 주로 보석과 잡화, 의류에 대한 니즈가 높은 반면, 남성들은 서류가방, 시계, 만년필 등에 대한 수요가 많은 편이다.

직접 판매 또는 위탁 판매가 중심인 중고 명품 숍에서 ‘불멸의’ 인기 제품은 샤넬, 구찌, 크리스찬 디올, 에르메스 등 잡화 브랜드들. 특히 최고가 아이템으로 통하는 에르메스 버킨백과 켈리백은 ‘없어서 못 파는’ 인기 품목이다. 시계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롤렉스, 까르띠에 등의 거래가 가장 왕성하게 일어나는 브랜드들이다. 주얼리의 경우엔, 디자인의 콘셉트가 분명해 재세팅이 어려운 명품 브랜드 제품보다는 일반적인 파인주얼리 거래가 훨씬 많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전 소유주의 ‘이력’이 프리미엄이 되기도

중고 명품 숍을 찾은 대치동 주부 이 모 씨. 그는 진열장 속 주얼리들을 한참 살펴본 뒤 특정 아이템을 골라 보여 달라고 요청하며 “이 보석은 누가 썼던 것이냐”고 물었다. 보석의 가격도 중요하지만 종전 소유자가 어떠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인가도 중요하다는 것이 이 씨의 생각. 중고 명품 숍을 찾는 고객들은 몇 군데 숍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가격 비교를 하며 쇼핑하는 ‘단골고객’이 많은 관계로 숍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물건’만큼이나 제품의 이력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강남 중고 명품 숍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이색 풍경은 점심 때마다 주부들이 숍에 모여 함께 점심을 즐기며 정보를 교환하는 것. 이들이 나누는 화제는 정치적 이슈에서부터 교육 문제까지 다양하다. 비슷한 소비 행태를 가진 사람들인 만큼 빠지지 않는 화제는 보석, 가방 등 명품 스토리다. 한 때 연예인 H 씨가 소유하고 있다는 에르메스 가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야기가 퍼져 나가면서 일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강남 주부들이 명품 소비를 ‘공유’하는 이유는 명품이 그들을 묶어주는 일종의 공통분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고 명품업체 ‘세이노블’의 오은숙 대표는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간 자식들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편을 둔 주부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하면서 “매장에 자주 와 관심 있는 상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슷한 취향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취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특히 보석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 보석이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는 데 주요한 소재가 되기 때문이라는데, 종전 중고 명품 숍들이 이전 소유주와 새로운 구매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에 충실했다면, 최근에는 환금성, 희귀성이 구매 결정의 주 요건이 되는 파인주얼리 소유주의 ‘신분’을 강조하는 추세를 띠고 있다. 한 마디로 신뢰할 수 있는 위탁자 물건이 구매하는 입장에서 더 높은 점수를 딴다는 얘기다. 이 ‘신뢰할’ 수 있는 위탁자 가운데는 연예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업계에서는 판매자 정보를 철저히 비공개에 부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판매자의 동의에 따라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보석은 감정서, 시계는 ‘연식’으로 등급 결정

중고 명품 숍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진품’ 명품을 과연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는 것일까. 중고 명품 숍에서 가장 최상급으로 취급되는 것은 갓 출시한 신상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신상품도 구매할 수 있는데, 대부분 선물로 받았으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다 파는 경우다. 이 경우, 위탁 판매자는 정가(백화점)의 75%의 가격을 챙기고, 숍에서 판매할 때는 정가의 85~90% 선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계산하면 나오는 차액이 중고 명품 숍의 몫인 셈. 샤넬, 에르메스, 롤렉스, 까르띠에 등 수요가 꾸준한 브랜드 제품의 경우는 세일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크리스찬 디올이나 구찌 등은 운만 좋으면 큰 폭으로 세일할 때 구입할 수도 있다.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은 교환 판매 고객이 많다는 것. 쓰다가 싫증난 물건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을 때 가격적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실속파’들이 선택하는 매매 방식이다. 다만 교환 판매 시에는 숍 측에 18%의 위탁 판매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고 명품 숍을 찾는 소비자 입장에서 각 제품군별로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을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데, 보석은 공신력 있는 감정원에서 발급한 보석감정서가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된다. 그 다음은 디자인과 상태(유색 보석의 경우 빛깔)인데, 디자인이 너무 독특해 재세팅이 어려운 아이템은 등급이 떨어진다. 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식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연식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신발, 가방 등 잡화는 사용감 정도인데, 특히 남성용 제품의 경우 디자인이 유행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상태가 더욱 중요하다.

한편, 국내 최대 중고 명품 위탁 판매업체인 ‘구구스’는 가방을, ‘캐시캐시’는 시계를, ‘바이노블’과 ‘디어브랜드’는 의류를, 세이노블은 파인주얼리를 주로 취급하는 등 중고 명품 숍들도 특화 분위기를 타고 있는 추세다. 더불어 명품 시계 마니아층이 증가하면서 피아제, 파텍필립, 오데마 피게 등의 제품은 숍에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는 ‘귀한 몸’이 되고 있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MONEY 2011년 12월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