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기술에 '올인'…프라다·코치 제발로 찾아와
주조 금형 용접 피혁 염색 등의 산업은 최종 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초산업이다. 그래서 이들 산업을 ‘뿌리산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들을 사양산업으로, 취업 희망자들은 ‘힘들고 위험하고 작업환경이 깨끗하지 않은’, 이른바 ‘3D업종’으로 분류해 홀대해온 게 사실이다. 부품 소재 분야의 대일무역적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악조건 아래서 작업장 환경 및 근로복지 개선과 함께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경영혁신에 나서는 기업들이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뿌리산업을 21세기 최첨단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주도 업체들을 4회에 걸쳐 소개한다.

가죽기술에 '올인'…프라다·코치 제발로 찾아와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18 블록. 온통 무채색 계열의 삭막한 공단 분위기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건물 외관에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인 코치의 제품과 모델 사진들이 걸려있고 1층은 다양한 채색의 디자인들로 꾸며져 있다. 피혁업체 해성아이다이다. 이 회사는 버버리, 발리, DKNY, 지방시, 캘빈클라인,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에 원단을 납품하고 있다.

양영대 해성아이다 회장(56)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피혁공장이라고 하니까 왠지 냄새 나고 지저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죠”라고 반문한 뒤 “실제로 보니 어떻습니까. 첨단 패션업체 분위기가 나지요”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1999년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처한 이 기업을 인수해 11년 만에 매출을 10배 이상으로 늘렸다. 이 기간 동안 내수와 수출의 비중을 8 대 2에서 1 대 9로 바꿔놨다.

그는 성공 비결로 피혁업계의 트렌드를 잘 잡아낸 것과 연구·개발(R&D) 부문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한 것을 꼽았다. 당초 이 회사의 주력 품목은 신발용 피혁이었다. 하지만 양 회장은 해성아이다를 인수할 즈음부터 핸드백용 피혁 생산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성장속도가 빠른 신흥국 등을 중심으로 명품 핸드백에 대한 여성들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생산설비를 새로 도입하고 연평균 50억원을 R&D에 투자했다. 이탈리아 가죽기업들의 고급기술도 벤치마킹했다. 품질도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2009년엔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새 공장 설립에 150억원을 투입했다.

해성아이다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아시아권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코치 프라다 등 명품 업체 바이어들이 제발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이 공통적으로 유로화를 써야 하는 유로존으로 통일되면서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내 피혁 제조업체들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영향도 있었다.

해성아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에도 1200억원대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엔 144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1999년(80억원)에 비해 무려 18배나 늘어난 것이다.

양 회장은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세계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 투자에 나선다면 얼마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