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달리고 뜨겁게 담근다
일본 혼슈 최북단에 자리한 아오모리(靑森)현. 쓰가루(津輕)해협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엔 홋카이도와 이웃하고 동쪽으론 태평양이다. 홋카이도, 니가타와 더불어 눈의 나라 일본에서도 눈이 많기로 유명한 세 곳 중 하나다. 태고 적 삼림이 그대로이고 온천이 지천인 이 곳, 심신 세척과 활력충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설계하기에도 그만이다. 아오모리의 겨울 유혹으로 출발한다.

◆일본 스키 100년 역사를 잉태한 핫코다산

거북등 같은 8개 봉우리와 산 정상의 늪지 고원이 밭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붙인 해발 1584m의 핫코다산(八龜田). 1902년 이곳에서 설산 행군을 하던 일본 보병 5연대 장병 210명 중 199명이 숨졌다. 그로부터 9년 뒤 외국인 교관을 초청, 스키라는 신(新)장비를 강습한 게 일본 스키의 시작이다. 핫코다 로프웨이에서 케이블카를 탄다. 총연장 2459m에 이르는 로프웨이는 스키 장비와 스키어들을 10분 만에 표고 1300m의 산정공원까지 실어 나른다. 케이블카 아래로 펼쳐지는 설산은 말 그대로 눈의 바다. 엄청난 적설량 덕분에 자연 상태에서 원 없이 파우더스노를 즐긴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장장 5㎞의 긴 코스에서 활강의 재미를 만끽한다.

핫코다의 나무들이 눈을 뒤집어 쓴 채 얼어붙은 수빙(樹氷)의 장관은 보너스다. 진시황릉의 병마용 같기도 하고 눈의 형상을 한 괴물(스노몬스터)로도 불린다. 본격 시즌을 맞은 이 곳에선 내년 5월 중순까지 스키와 보드를 즐길 수 있다.

차갑게 달리고 뜨겁게 담근다

◆낯선 남녀들이 한 탕에 풍덩

이번엔 혼욕체험이다. 남녀혼탕 스카유(酸ケ湯)온천. 110년 전 메이지 시대에 지은 고색창연한 목조건물이다. 입구엔 “혹시…” 하는 남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우리도 보거든!”하는 여성의 시선을 표현한 그림이 눈에 띈다. 남녀 출입구는 따로 있지만 탕 안에서 만나게 돼 있다. 탕 안은 수증기로 뿌옇다. 잠시 시간이 지나니 윤곽이 들어온다. 10여명의 얼굴이 아슴푸레하다. 대부분 남자들이고 여성도 두어 명 보인다. 욕장엔 두 개의 큰 탕과 마사지용 폭포가 있다. 유황냄새가 진동한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탕에 먼저 들어간다. 탕 한가운데 ‘왼쪽은 男(남) 오른쪽은 女(여)’라는 팻말은 가상의 경계선뿐이다. 눈엔 힘이 잔뜩. 입안도 마르는 것 같다. 헛기침도 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을 슬쩍 훔쳐본다.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몸을 일으켜 마사지용 폭포 밑으로 가 정수리에 물을 맞는다. 입안 가득 들어온 온천수가 엄청 짜다. 정신이 확 든다. 80㎡ 면적을 모두 노송으로 장식한 대욕장 센닌부로(千人風呂)는 이곳의 랜드마크. 예전엔 1000여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혼욕을 즐겼다고 한다. 피부 치료 효능을 인정받아 1954년 국민보양온천 1호로 지정됐다.

◆현대식 온천료칸

고마키온천 아오모리야는 리조트형 온천료칸이다. 아오모리 관광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일본 100대 온천 중 하나인 고마키온천은 극상 피부미용 효과로 유명하다. 천연보습 성분인 메타규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규산 함량이 50㎎ 이상이면 고운 피부 효과, 100㎎ 이상일 땐 강력 미백효과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온천의 메타규산 함량은 자그마치 180㎎ 이상이란다. 피부에 에나멜을 바른 듯 촉촉하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설경을 바라보며 노천온천도 할 수 있다. 호텔을 중심으로 20만여㎡ 부지에 조성돼 있는 시부사와 공원은 산책코스로 손색없다.

◆사계절 트레킹 오이라세 계류

안으로 들어갈수록 여울이 많아진다(奧入瀨)는 뜻의 오이라세 계류(溪流). 해발 400m의 도와다(十和田)산 정상의 칼데라 호수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수많은 폭포와 여울을 만든다. 쉴 새 없이 산 정상의 소식을 퍼 나른다. 오이라세 계류부터 도와다호(湖) 정상까지는 10㎞남짓. 3~4시간 거리다.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계류에 바짝 붙어있는 산책길을 따라 평탄하게 오르며 맑은 물과 심산유곡의 정취를 흡입한다. 일찍이 메이지시대 문인 오마치 게이케쓰는 “살 거라면 일본, 즐기려면 도와다, 산책에는 오이라세 3리(里) 반”이라 칭송한 바 있다.

◆소소한 체험거리 재미있는 시내 투어

아오모리어업센터라는 거창한 간판이 걸린 시내 수산물 재래시장. 이곳에선 놋케동을 먹어보자. 공기밥에 고명으로 얹는 각종 회와 날치·성게·명태알 등을 파는 좌판이 있다. 각자 먹고 싶은 만큼 골라서 얹은 뒤 고추냉이를 푼 간장으로 비벼 먹는다. 비리지 않아 입에 맞는다. 아오모리의 풍부한 해산물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나온 아이디어란다. 3년 전부터 시작돼 지금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입소문이 난 상태.하치노헤(八戶)에선 일본 사케의 제조 과정을 견학할 수 있다. 9대째 가업을 이어받았다는 고마이 히데유키(駒井秀介·34) 하치노헤주조 사장이 쌀의 도정부터 완성된 사케를 병에 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탁주 타입부터 오토코야마(男山)란 브랜드의 사케까지 시음도 해본다. 아오모리의 물산이 모두 모이는 아스팜, 이 지역 등불축제인 ‘네부타’를 전시하는 와랏세도 가볍게 들를 만하다.

■ 여행팁

대한항공에서 매주 수·금·일 주3회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30분에 직항편을 운항한다. 아오모리까지 약 2시간30분 걸린다. 돌아오는 비행기편은 오후 5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갈 때보다 30분 정도 더 걸린다. 동해에서 부는 편서풍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한동안 운항하지 않다가 10월 말부터 재개했다. 하코다산 등에선 5월까지도 스키를 탈 수 있다지만 충분한 적설량과 설질을 즐기려면 1~3월이 최적기다. 월별·스키장별·여행사별 가격대가 다르므로 사전 확인 필수.

정용성 기자 h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