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PT)은 무슨, 연말은 지나고 내년에 생각해 봅시다.”

헤지펀드 출범을 준비 중인 한 대형 자산운용사 마케팅본부장은 자금 유치를 위해 대형 기관투자가를 찾았다가 이처럼 면박만 당했다. 헤지펀드에 관심은 있지만 가입 여부를 검토할 인력도 여건도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펀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9개 헤지펀드 운용사는 지난 16일과 19일 헤지펀드 등록 신청서를 제출해 오는 23일부터 본격 운용에 들어간다.

하지만 초기 모집 규모는 헤지펀드 운용을 도울 프라임브로커(PB)와 계열 금융회사의 자금으로 채워질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12개 헤지펀드 신청은 했지만…연기금 등 큰손은 "지켜보자"

◆모습 드러내는 한국형 헤지펀드

9개 운용사가 감독당국에 펀드 등록 신청을 하면서 헤지펀드의 면면이 드러나고 있다.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한국형 헤지펀드는 국내 또는 아시아 주식의 롱쇼트전략(고평가 주식 공매도와 저평가 주식 매수), 채권 차익거래 등을 운용전략으로 할 계획이다. 목표수익률은 연 10% 전후지만 ‘하나UBS프라임롱숏알파’와 ‘동양 MY 에이스 안정형’ 등은 연 7~8% 수준으로 낮게 잡았다.

운용보수도 해외의 2~3%보다 크게 낮은 1% 정도다. ‘미래에셋 이지스 롱숏’은 0.8%, ‘미래에셋맵스 스마트Q’ 오퍼튜니티와 토탈리턴은 각각 0.5%, 0.3%에 불과하다. ‘우리 헤리티지 롱숏’은 운용보수를 0.5%로 정했다. 성과보수율은 일정 수익률(허들)을 넘을 경우 초과이익금의 10~20% 수준이다.

금융당국의 권유에 따라 운용사별로 ‘이지스’ ‘스마트’ ‘펀더멘털’ ‘프라임’ ‘H클럽’ ‘헤리티지’ ‘MY ACE’ ‘명장’ 등의 브랜드를 상품명에 넣었다.

하지만 초기 설정 규모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PB들이 대부분 50억원을 종잣돈(시드머니)으로 대주고 계열 금융회사 정도만 추가 자금을 넣어줄 ‘전주’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삼성 H클럽 에쿼티헤지’와 ‘우리 헤리티지 롱숏’은 PB 50억원을 포함해 100억원만으로 등록을 신청했다. 업계 전문가는 “최소 200억~300억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등록만 해놓고 자금을 못 모으는 곳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운용사는 다른 주문을 위탁할 테니 1억~2억원씩이라도 헤지펀드에 돈을 넣도록 증권사 법인영업 쪽과 ‘변칙 거래’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초기 운용 성과로 판가름 날 듯

초기 모집 규모가 기대에 못 미친 데는 이유가 있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마케팅본부장은 “당국의 목표대로 연내에 출범했지만 자금을 모으는 입장에서는 6개월 빠르거나 한 달 늦거나 했어야 했다”며 “주요 기관들이 이미 올 자금 집행을 끝낸 상태여서 내년에나 보자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팡파르’를 울리지만 국내 대표 ‘큰손’인 연기금은 제외됐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우정사업본부 사학연금 교원공제회 공무원연금 등도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개인투자자의 최소 투자 한도가 5억원으로 너무 높아 투자할 수 있는 개인들이 제한적인 데다 판매직원들이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점도 초기 설정이 미미한 이유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헤지펀드 전망은 장밋빛인데 현실은 안갯속”이라며 “인프라 구축이 완료되고 증권사와 자문사들이 헤지펀드를 내놓을 내년 2분기에나 의미 있는 자금 유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환/임근호 기자 ceoseo@hankyung.com